[문화와 삶]‘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의 의미
본문 바로가기

시네마 블라블라

[문화와 삶]‘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의 의미

새해 첫날 처가 어른들과 식사를 하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야기가 나왔다. 장인은 근 10년 만에 처음 극장에 가신 거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TV에서는 퀸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렀다. 광고, BGM,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퀸이 국민가수로 등극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럴만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국 관객수는 총 936만397명이다. 역대 외화 흥행 6위다. 개봉 10주가 지났음에도 예매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 추세로 봐서는 1000만 관객도 꿈이 아니다. 퀸의 모국인 영국을 상회할 정도로 한국에서 특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흥행세는 세계적이다. 개봉 첫 주에 50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익도 엄청나다. 5200만달러를 들여 7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14배 장사다. 세계 2위 시장인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했음에도 그렇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돈 되는 비즈니스에는 사람이 몰리는 법. 벌써 할리우드는 제2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꿈꾸나보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던 데이비드 보위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의 아들인 영화감독 던컨 존스의 트위터에 의하면 그렇다. <어벤져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슈퍼 히어로 무비의 시대가 열렸듯, <보헤미안 랩소디>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다. 그저 ‘음악영화’의 전성기라고 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나는 ‘록스타 무비’라 부르고 싶다.

 

극장은 위기다. IPTV, 넷플릭스 등 플랫폼은 다양해졌다. TV의 사이즈는 점점 커지고 화질은 점점 좋아진다. 스토리, 영상미 등 대중이 영화를 통해 얻고자 했던 지점을 더 이상 극장은 독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체험과 경험이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아바타>의 3D혁명, 히어로 무비 붐을 주도하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스펙터클한 세계관 같은 것들이 그렇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경험욕구의 다음 단계를 제시한다. 이 영화는 자체로서는 흠결이 많다. 하지만 그 흠결을 마지막 15분 라이브 에이드신은 단숨에 덮어 버린다. 프레디 머큐리의 드라마틱한 삶이 압도적 퍼포먼스와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군중 위에서 불타오른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음악가는 많다. 스타디움을 꽉 채운 스타 역시 많다. 이 둘을 겸비한 록스타는 그러나 많지 않다.

 

언젠가부터 스타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은 존재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음악시장은 지역 단위로 분화되었다. 언젠가 폴 매카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공연계를 보면 앞으론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곡의 히트곡을 내는 밴드는 있어도 공연 전체를 계속 들뜨게 하는 레퍼토리가 있는 밴드는 없다. 아마 U2와 메탈리카가 마지막 스타디움 밴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중의 취향이 잘게 나뉘면서 세계 시장을 씹어 먹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던 삶, 히트곡 하나로 수억달러가 요동치던 음반시장, 수만명의 관객을 압도하는 쇼맨십과 퍼포먼스가 삼위일체를 이뤘던 때가 바로 퀸이 활동하던 때였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퀸 같은 록스타들이 빛나고 불탔다. 그때 차트와 유행을 바꾸고 운명을 달리한 이들이 한둘이던가.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명단을 작성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 조지 마이클, 커트 코베인, 존 레넌…. 아직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은 또 어떤가. 마돈나, 롤링 스톤스, 폴 매카트니… 너무나 굵직해서 이름을 한 품에 안을 수 없는 이들만 해도 이 정도다. 충분히 영화로 만들 만한, 흥망성쇠의 삶과 찬란한 절정의 순간을 남긴 이들은 차고도 넘친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낸 새로운 흥행의 방정식을 과연 영화산업이 바라만 보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늙어가는 극장은 돌아올 수 없는 시대의 음악과 손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의 플랫폼, 과거의 콘텐츠가 결합하여 새로운 현재를 만들려 하고 있다. 가장 낡은 것들이 가장 새로운 것이 될 것이다.

 

<김작가 |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