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5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프레디 머큐리라는 그토록 비범했던 뮤지션을 그토록 평범하게 주무른 영화가 <맘마미아> <라라랜드> <비긴 어게인> 같은 수작들을 이미 제쳤고 <레미제라블>(592만명) <미녀와 야수>(513만명)를 넘어서며 음악영화의 새로운 흥행 기록을 경신할 수도 있다니….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른 결과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얼마 만이던가?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 날짜에 맞추어 예매하고 극장을 찾았던 때가…. <보헤미안 랩소디>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렇게 시시하고 볼품없을 수가…. 틀에 박힌 진부한 구성이나 음악 자체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어수선한 편집은 그렇다 치자. 설사 그게 퀸 음악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해도, 문제는 캐스팅이었다.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계속 구시렁거리게 만드는 가장 핵심에 가까운 문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왼쪽)와 <헤드윅>의 한 장면.
“완전 캐스팅 미스야. 다른 멤버들은 다 비슷해, 브라이언 메이는 소름 끼치게 똑같고. 정작 주인공만 이상해. 프레디 머큐리는 양성애자고 때때로 여장을 했지만 남자보다 더 마초스럽고 훨씬 더 동물적인 듯한 아주 복잡한 매력이 있었다고. 그런데 라미 말렉이라는 이 애송이는 그 튀어나온 앞니로 마치 풀을 뜯을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잖아. 밋밋하달까? 무엇보다 무대에서 훨씬 더 압도적인, 관객의 눈과 귀는 물론 심장까지 꼼짝 못하게 움켜쥐는 프레드 머큐리 특유의 ‘불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라미는 뭐랄까, 좀 작게 느껴져. 프레디에 비하면 왜소하고 어딘지 나약해 보이고, 왠지 좀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하다못해 사슴처럼 촉촉한 그 눈망울도 영 비위에 거슬려. 자기랑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그저 학습된 연기력으로 임하는 배우의 모습이라고 할까? 하여튼 진짜 같지 않은 거지.”
그 때문인지 정반대 지점에 놓인 위대한 음악영화 <헤드윅> 생각이 간절했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후 애인에게 버림받고 또다시 배신당하는 트랜스젠더 가수 ‘헤드윅’은 결코 실존인물이 아니지만 존 캐머런 미첼이 연출하고 연기하는 헤드윅은 진짜 같았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주인공의 열창과 독백, 그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이 또 너무도 진실되게 느껴져서 어두컴컴한 작은 극장(지금은 없어진 관철동의 코아아트홀에서였다!)에 앉아서 요의를 참으면서도 이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이 주연 배우와 캐릭터를 너무도 동일화시킨 나머지 그의 실제 성정체성을 의심했다. “진짜 트랜스젠더 아냐?” 그 질문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남자’였다고 답하는 전대미문의 걸출한 예술가 존 캐머런 미첼에게 더욱더 열렬히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가 뜨겁게 안겨준 ‘영화의 진정성’이랄지 ‘나와 다른 타자의 아픔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에 대해서 진정 온 마음으로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참 초라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신은 실로 대단해 보였지만, 사실과 좀 다르다. 무엇보다 영화와 달리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라는 사실을 ‘라이브 에이드’ 이후에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 무대 이후 그의 진짜 ‘절정’이 시작된 셈이었다. 그는 에이즈와 그로 인한 여론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훌륭한 음악들을 이전보다 더 많이 탄생시켰다. 심지어 그러는 와중에도 양성애자다운 방식으로 연애하며 자기만의 신성한 사랑 안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실로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단 하나의 비범한 인생이었다.
나는 <헤드윅>이라면 모를까,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그다지 진정성이라든가 배우의 열연, 작품성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범작 수준의 영화가 음악영화 랭킹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 같은 소수의 음악영화 애호가(음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해서 음악영화라면 일단은 덮어놓고 먼저 보는 사람들) 몇몇이 딴지를 걸어봤자 대세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도 안다.
물론 나도 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런 과분한 영광을 누리는 건 어디까지나 퀸이라는 전설적인 밴드가 만들어낸 음악의 힘이라는 걸. 게다가 내게도 이제야 <보헤미안 랩소디>가 가진 나름의 미덕이 조금 보인다. <헤드윅>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그와 비슷한 방식으로심장이 멎을 만큼 멋진 음악과 함께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한층 성숙시켰다고 나는 느낀다. 게다가 영화를 쉽게 만든 덕분에 기대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열정적인 삶과 음악으로 함께 공명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좋은 일이고 기꺼이 축하할 만한 일이다.
다만 <보헤미안 랩소디>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며 <헤드윅>을 챙겨보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외감과 분노를 품고 사는, 체념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자 하는, 포기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몰래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만하면 영화에 열광한다 한들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영화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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