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예술검열’에 침묵하는 국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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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예술검열’에 침묵하는 국악계

주목받는 젊은 국악그룹 중 하나인 ‘앙상블 시나위’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던 금요공감 ‘소월산천’ 공연을 둘러싸고 검열 논란이 일어난 지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사건의 요지는 공연 2주 전 국립국악원 측에서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에 포함된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와의 협업을 배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이 요청을 거절하고 공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앙상블 시나위 공연 취소로 당초 예정된 프로그램들은 모두 취소되고 금요공감은 주로 국립국악원 단원들 중심으로 대체되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프로그램은 계속되었고 국악계의 침묵과 망각의 시간은 길어갔다.

‘앙상블 시나위’ 공연 취소 사건은 자칫 국악계 내부의 행정 스캔들로 묻힐 뻔했다가 안무가 정영두의 1인 시위 소식이 알려지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금요공감’의 다른 프로그램을 맡았던 정영두는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 취소가 명백한 검열에 해당된다며, 국립국악원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속적인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국립국악원 책임자의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청했지만, 한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10월 말 국립국악원의 공식입장이 나왔다. 국립국악원은 “풍류사랑방은 자연음향 국악연주를 위해 설계돼 음향과 조명장치를 사용할 수 없는 공연장”이어서 “공간 특성상 연극의 경우 대사전달, 조명 효과 등의 미흡으로 인해 완성도 높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정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판단하기에는 얼핏 그럴듯한 해명이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먼저 금요공감의 프로그램 취지가 원래 장르 간의 융합이 아니었나. 그리고 이후에 예정된 프로그램들 역시 음악, 무용, 연기가 결합된 프로그램들이 아니었나. 원래 대단한 음향과 조명을 요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풍류사랑방 무대가 얼마나 엄격하고 준엄하기에 연극 대사 하나 용납 못할 만큼 완성도 높은 공연만 허용했었나. 그럼 그동안 예술 장르 간 협업했던 다른 모든 공연은 무엇인가.

안무가 정영두_경향DB



국립국악원의 해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설사 배제의 이유가 정치적 검열이 아니라 해도, 당초 약속된 공연 프로그램을 놓고 조명, 음향의 기술적 문제를 운운하면서 자의적으로 배제를 요청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심각한 예술 검열이다. 엄밀히 말해 국악원은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에 음향과 조명의 기술적 문제를 운운하면서 연극 부분을 빼라고 할 권한이 없다. 그 권한은 오로지 관객들만 판단할 수 있다. 기술적인 것은 담당 예술감독이 판단할 문제이다. 조명이며, 음향이며 국악원이 돈을 주고 공연장도 제공하니 자기들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저열한 예술검열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더 큰 공포는 바로 국악계의 침묵이다. 안무가 정영두가 자신의 집안일처럼 국립국악원 검열 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연일 1인 시위를 하는 사이, 이른바 ‘국악계’에 속한 어떤 사람도 1인 시위에 동참하거나, 공식적인 항의를 하지 않았다. 이런 불행한 사태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앙상블 시나위와 다른 팀들도 모두 국악계의 동료들이고, 후배들이고, 제자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놀랍게도 그들의 동료, 후배, 제자들이 검열사태로 인해 좌절하고 상심하고 있는 사이, 그 누구도 이 문제의 심각성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공개적, 공식적 용기를 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지지하지만, 그래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집단 침묵. 물론 그 침묵의 속사정은 익히 알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국악계의 구조적 커넥션이 바로 침묵의 카르텔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번 사태만큼은 달라야 한다. 검열당하고, 침묵함으로 인해 국악계 스스로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았나. 여전히 앙상블 시나위 검열 사태가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선배 국악인들은 전도유망한 젊은 국악인들을 잘못된 검열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처절하게 슬픈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었어야 한다. 그들은 그저 이런 사태에 침묵하는 것이 국악계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검열당한 동료, 후배, 제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 착각을 스스로 가장해 침묵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닐까. 침묵은 망각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침묵이야말로 억압된 것이 회귀하듯, 검열의 무의식에 내장되어 있다가 스스로 공포의 거울을 보며 치를 떨게 만들 것이다. 나 역시 국악계에 속한 한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악계가 침묵하지 말고 뭐라도 발언하고 행동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