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의 실체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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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사재기의 실체적 진실

최근 모 종편 방송에서 음원 사재기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몇몇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브로커로부터 음원 사재기 제의를 받았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들이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많은 뮤지션들과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음원 사재기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불공정행위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음원 사재기를 근절해야 한다는 대중음악계의 공통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런 파렴치한 거래에 돈을 지불하고, 그 이상의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음원 사재기는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왜 이런 불공정행위를 저지를까?

음원 사재기는 말 그대로 특정 세력이 돈을 받고 의도적으로 디지털 음원의 스트리밍 횟수를 급격하게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음원 사재기는 2013년 출판계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사재기와 마찬가지로 판매 순위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불공정행위이다. 책 사재기는 주로 출판사가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음원 사재기는 특정 업체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를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책 사재기의 폐해가 워낙 커서 정부는 2014년 7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이를 처벌하는 법적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음원 사재기는 아직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조항이 없는 상태이다.

모 스포츠연예지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음원 사재기는 특정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ID를 만들어, 고의로 스트리밍 횟수를 무제한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ID가 하루 종일 스트리밍을 재생할 경우 500회 정도가 가능한데, 조작이 가능한 몇몇 재생 프로그램을 동원하면 한 계정당 하루 평균 1만여건의 스트리밍을 생성할 수 있다. 이렇게 수백, 수천개의 ID를 동원해 수일간 집중적으로 음원을 재생하면 특정 음원이 순식간에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다. 이 매체는 신인의 경우에는 5억원, 기성 뮤지션은 3억원을 쓰면 4~5일 동안 음원 실시간 순위 차트의 상위에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왜 이런 일을 할까?


Jtbc 방송의 음원 사재기 뉴스 보도 화면 _경향DB



음원 사재기는 사실 가요가 방송사에 많이 노출되기 시작했던 1980년대부터 자행된 연예계 홍보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정 연예기획사 매니저들은 방송사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올리거나, 방송 출연을 위해 예능국 담당 PD들에게 접근해 홍보비를 제공했다. 홍보비 제공은 방송사와 연예계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홍보비 지불 방식은 현금뿐 아니라 주식 제공으로 확대되었고, 예능 PD들의 각종 경조사에서 고액의 부조금을 내거나, 장례식장이나 룸살롱 등에서 노름하며 돈을 잃어주는 방식으로도 행해졌다. 실제로 1997년, 2002년, 2008년 검찰 조사에 의해 홍보비 수수가 사실로 밝혀져 다수의 예능 PD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음원 사재기는 홍보비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횟수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순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사가 진행하고 있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는 음원 판매가 순위 선정 기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음원 판매비율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65%까지 높다. 순위 선정에서 차지하는 음원 판매비율이 높은 이유는 음원 판매가 인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음원 판매조차도 일부 인기곡의 경우 사전에 조작된 음원 사재기의 결과였다는 게 사실상 밝혀진 것이다.

왜 특정 연예기획사가 굳이 수억원을 들여 음원을 사재기해서 순위를 높이려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만큼 확실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없다. 음원 사재기를 통해 음원판매 순위가 높아지면,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순위가 높아지고, 그만큼 방송 인지도가 높아져 전국의 각종 행사에서 개런티를 올릴 수 있다. 운 좋으면 방송사의 다양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해 인지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음원 사재기는 나중에 음원 저작권 수익으로 회수할 수도 있다. 인지도가 높은 대형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그룹보다는 신인 아이돌 그룹이나 솔로 뮤지션을 보유하고 있는 신생 혹은 중간층 연예기획사가 음원 사재기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음원시장의 유통 환경을 어지럽히고 음악 콘텐츠의 공정행위를 방해하는 음원 사재기를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음원 실시간 차트 노출을 없애고,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 연예기획사의 자정 의지도 필요하고, 음원 사재기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