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읽었다. 세어보니 일주일에 삼십권은 읽은 것 같았다. ‘자기계발서 중독’이라고 할 만했다. 시작은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일도 사람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환경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고 결국 다 내 탓이라며 자기비하에 빠져드는 그런 날이었다. 나에게는 답이 필요했고, 그것도 지체 없이 당장 얻기를 바랐다. 어떻게 해서든지 바닥난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쓸모있는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때 자기계발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폭식하듯 자기계발서를 읽어댔다. 다섯권을 통독으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독려하는 글도 있고, 헤매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하는 글도 있었다. 물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고, 네 안에 이겨나갈 힘이 있으니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라고 독려하는 글도 있었다.
그동안 자기계발서의 달콤한 위로와 격려를 불신해왔다. 좋은 자기계발서도 있지만 그 중 비슷한 말들로 대충 장수만 채운 글들까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팔려나가는 게 못마땅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철학서나 인문서에서 답을 찾으려 해왔다. 하지만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한 문장씩 읽고 또 읽고, 뒤집어 보고 되돌아가 다시 읽고 해야 겨우 이해가 되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나에겐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낼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괜히 머릿속만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두꺼운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를 읽어치운 뒤, 마치 에너지드링크를 다섯잔 연달아 마신 사람처럼 팔다리에 힘이 솟았다. 자기계발서를 내심 폄하했던 마음은 이미 철수한 뒤였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죄가 없었다. 독자와 출판사가 원하는 만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팔려나갔다.사람들이 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현대인들이 듣고 싶은 말을 모아놓았으니 존재이유도 명확했다.
유일한 문제는, 자기계발서의 위로는 유통기간이 짧다는 것이었다. 자기계발서로 인해 짧게나마 긍정 과다 또는 자신감 과다 상태에 있었지만, 근본적인 것이 그리 쉽게 바뀔 리 없었다. 다음날 금세 우울해진 나를 발견하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하듯 급히 주입한 긍정적 사고방식들도 채 내 것이 되지 않은 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결국 나는 또 다른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응급처방을 받아야 했다. 어찌보면 자기계발서는 약효는 짧지만 순간효과는 강력한, 응급약과 같았다.영양제보다는 모르핀 같은 진통제에 가까웠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에 이어 감정의 변화도 ‘패스트’해진 것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들이 자기계발서를 보고 있다. (경향DB)
읽으면 읽을수록 ‘약발’이 떨어지며 허무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봐도 그 말이 그 말 같았고,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 듯한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비싼 돈을 주고 용하다는 점집에 갔는데 점을 볼 때는 맞아, 맞아 하면서 손뼉을 치다가도 나와서는 허망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은 누구한테 한대도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말들의 집합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읽은 삼십권의 자기계발서 중에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인 메시지는 몇 가지나 될까. 나는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독자들은 자기계발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다른 ‘자기’들일 뿐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이런저런 원칙이 모두 사람에게 적용될 리 만무하다. 이를테면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이야기할 때 일부는 크게 감동하고 위로받았지만 일부는 반감을 느꼈다. 저자의 말들이 도무지 공감이 안된다고 했다.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위로하는 달콤한 말들이, 역으로 스스로 아픈 상황을 견디게 할 뿐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에는 눈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경향DB)
출판시장에 자기계발서 홍수가 일어난 것을 비판하기 전에 그걸 읽는 우리의 독서습관을 돌이켜볼 일이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사람들은 어떤 변화나 개선을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 때문에 저자의 생각을 빠른 속도로 의심없이 흡수해버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얼핏 보면 구구절절 옳은 말만 써놓는 게 자기계발서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만 쓰여 있는 듯한’ 자기계발서도 이른바 무분별한 독서가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에게 유의미한 것들을 추려내야 한다.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탈나기 십상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서든, 인문서든 맞지 않는 것은 버리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다가 보석처럼 건져낸 의미있는 몇 가지 메시지를 건져올려 자기 삶을 개선할 실마리를 찾았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쁜 일이다.
김지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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