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며 마음을 나눴습니다…”
배우 명세빈이 지난 9월 중순 아프리카 남수단공화국으로 열흘간의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울고 있을 난민촌 아이들을 돕기 위해 떠났던 그녀는 불모지로만 여겼던 그곳에서 오히려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비록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평생 자신을 은인으로 기억하며 살아갈 그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여전히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고. 명세빈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함께한 아주 특별한 10박 11일을 전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내일을 잃은 난민촌 사람들
임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귀환민 어린이들의 이모저모. 비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식 교사가 없어 선생님을 자원한 귀환민들이 가르치는 숫자 외우기와 몇 가지 단어를 읊는 것이 다지만, 모든 어린이들의 가슴속엔 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세빈(36)이 오랜만에 특별한 외출을 했다. 그동안 연기활동 틈틈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각종 문화 행사에 참여하며 사랑의 손길을 나눠왔던 그녀가 이번에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고 왔다. 웃음보다 눈물이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고자 손수 만든 인형까지 배낭 가득 챙겨가며 그녀가 향한 곳은 아프리카 남수단공화국 국경 지역에 위치한 랭크 난민촌. 비행기로 스물두 시간, 다시 작은 보트를 타고 뱃길로 여덟 시간을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7월 9일, 바로 얼마 전에 독립한 신생국 남수단은 수십 년간의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해 현재 인적·물적자원의 부족과 사회기초시설의 부재, 북수단공화국에서 추방된 국민들의 수용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남수단이 독립하면서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십 년 전 북수단으로 이주한 수만 명의 남수단 출신 사람들이 독립 후 북수단에서 강제 추방되면서 새로운 삶터를 찾기 위해 가재도구 몇 개와 옷가지만을 들고 국경을 넘어 랭크 지역에 마련된 난민캠프에서 기약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랭크 지역은 북수단에서 남수단으로 넘어오는 시작점 중 하나다. 현재 3만 명이 넘는 귀환민들이 대형 버스 혹은 바지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해 낡은 천조각과 나무 등으로 임시 천막을 만들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하루 한 끼로 겨우 배를 채우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11월까지 계속되는 우기로 지형이 바뀌고 도로가 막혀 남수단으로 이동하는 것도, 필요한 식수와 식량 등 최소한의 보급품 등을 지원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남수단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에요. 제대로 된 도로가 없어 진흙탕 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 학교에 갈 돈이 없는 어린이들이 저마다 인근 지역에서 가져온 물건을 실은 노새를 끌며 시장에 팔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들, 긴 세월에 걸친 내전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불안함 등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살 곳도 마땅치 않은 아이들이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나가고 있어요.”
불모지로 모여드는 도움의 손길, 희망의 기운
매일 급격히 불어나는 귀환민들로 인해 지원 물품도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특히 수많은 어린이들이 식량이 없어 굶고, 교육을 받거나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희망이라고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임시 천막 안에서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명세빈은 난민캠프, 영양실조치료센터,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학교와 보건소를 찾아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열악한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아동병원은 내전으로 건물이 훼손되고 오래돼서 병실이 턱없이 부족해요. 의약품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아 수많은 아픈 어린이들이 병원 앞 땡볕에 나와 앉아 하루 종일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요.”
하지만 남수단 곳곳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기 위한 희망의 기운이 감지되기도 했다. 현재 여러 구호단체들이 난민촌 어린이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이동진료소를 설치하고, 식량을 배급하고,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귀환민들이 힘을 내 자신의 고향인 남수단으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랭크 지역 미나 난민캠프의 임시학교 아이들이 유니세프 차량을 보자 모여들었다. 저마다 카메라 앞에서 웃음 짓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이날 어린이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깜짝 선물을 받으며 하루를 기분 좋게 보냈다. 말라칼 아동병원의 격리병동실. 이곳에는 말라리아, 홍역 등 전염병에 걸린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 안은 휑하고, 엄마는 찬 바닥에 앉아 힘겹게 숨을 쉬는 아이를 바라보며 하루빨리 낫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남수단 어린이들은 명세빈을 비롯한 외국인을 생전 처음 보는 터라 수줍음을 많이 탔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줬다.
특히 남수단 어퍼나일 주의 가장 큰 도시인 말라칼에 있는 유니세프 남수단사무소는 영양실조, 말라리아, 설사병 등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영양과 예방접종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말라칼 아동병원에 치료식 우유, 플럼피너트, 각종 백신을 제공하고 정부와 협력해 넓은 규모의 아동병동 건물을 신축 중이다. 또 어린이들의 위생을 위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을 만들고, 노상방뇨에 대한 개념이 없는 주민들에게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려 각종 전염병 등에 걸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초등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학교를 지원하는 등 기초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등 이제 막 새로 생긴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앞으로 남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미래의 아이들을 떠올리면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하는지, 왜 깨끗한 물을 먹어야 하는지 등 기초적인 것부터 아이가 커나가면서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모두 알려주고 기초적인 교육을 반드시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1 뜨거운 물에 탄 영양실조 치료식 우유를 식히기 위해 엄마들은 꼭 두 개의 컵을 들고 한쪽에 우유를 부었다가 다시 다른 쪽에 부었다를 반복한 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인다고 한다. 일정시간이 되면 모든 엄마들이 동시에 컵을 들고 우유를 식히는 모습이 특별하면서도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2 랭크 지역 미나 난민캠프에서 명세빈은 아침식사 중인 한 가족을 만났다. 아이가 마시는 건 곡식을 넣고 끓인 죽. 식구 수대로 끼니를 때울 수 있게 최대한 물을 많이 넣고 끓인 것이다. 구호식량이 다 떨어져 이마저도 이젠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아이의 엄마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3 아빠와 삼촌들이 적당한 곳에 임시 천막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햇빛을 피해 자신들이 가지고 온 가재도구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겪기에는 너무도 처참한 현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고되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명세빈은 그러한 힘든 여정 속에서도 아이들을 통해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난민캠프에서 한 여자아이를 만났어요. 그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커서 엔지니어가 되어서 남수단이 좋은 나라로 발전하는 데 기여를 하고 싶다’라고 말한 뒤 가슴이 벅차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아이를 품에 안고 함께 슬픔을 나누었어요. 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소망들이 언젠가 모두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에서의 첫 봉사활동을 마친 그녀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한다. 아이를 도와야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감동이었다고.
1 랭크에서 마지막 주말을 보내게 된 명세빈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난민캠프의 임시 학교를 찾아가 손수 만들어 갖고 온 인형들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줬다. 2 어린 동생을 위해 유니세프에서 제공하는 치료식 우유를 식히고 있는 이 여자 아이의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고 말했다. 이곳 아동병원에서는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돌보는 어린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3 난민캠프의 임시 학교에서 만난 이 여자어린이는 자신의 꿈은 엔지니어가 되어서 남수단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세빈이 손가락을 내밀며 “그 꿈이 꼭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자”고 약속을 하자 “알겠다”고 대답한 뒤 헤어지는 것이 슬퍼 아이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4 말라칼 아동병원을 찾은 명세빈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영양실조 아이들에게 공급하는 치료식 우유를 손수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녀는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를 안고 있었다.
“예전에는 봉사라는 것이 두려웠어요. 시간과 물질, 마음 등 제 것을 나눈다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로는 제 가치관이 조금 변한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여유로움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됐으니까요. 비록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난생처음 만났음에도 잠시나마 함께 웃고 울 수 있었던 아이들을 통해 제 마음에 새로운 사랑의 씨앗을 뿌릴 수 있어 무척 기쁜 시간이었죠.”
명세빈은 다시 그녀의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 열흘간의 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그녀가 완성시켜나갈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지탱해줄 든든한 지렛대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내가 나눈 행복은 동굴 같던 누군가의 삶에 환한 등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바로 나 스스로의 삶에도 소중한 자양분으로 녹아들기 때문이다.
유니세프에 여러분의 사랑을 나눠주세요!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창립된 유엔기구로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서 영양, 보건, 식수 공급 및 위생, 기초교육, 거리의 아이들과 어린이 노동자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 보호 사업을 펼쳐왔다. 현재 유니세프는 유엔이 채택한 새천년 개발 목표 8개항을 달성하기 위해 영·유아 생존과 발달, 기초교육과 성 평등, 에이즈 예방과 치료, 어린이 보호, 어린이 권리 주창이라는 다섯 가지 중점 사업 분야를 정하고 190개 이상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56개 개발도상국에서 어린이 생명을 구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6·25 전쟁 당시 긴급구호대상국으로 선정돼 분유와 담요, 의약품 등을 지원받았다. 이후에도 유니세프는 1993년 말까지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맞춰 어린이를 돕는 사업을 전개해왔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주는 위치로 발전했고 2010년에는 4천50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유니세프 본부에 지원했다. ●후원 문의&신청 02-723-8215, http://www.unicef.or.kr/ |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제공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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