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원, 제주도의 푸른 밤
본문 바로가기

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최성원, 제주도의 푸른 밤

제주는 유배와 통곡의 땅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힐링의 땅이기도 하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일렁였을까. 1988년 ‘들국화’의 최성원이 발표한 이 노래는 후배들의 리메이크가 잇따르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스테디송이 됐다.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못지않게 어디론가 떠나라고 자극하는 노래다.

 

 

‘들국화’의 해체로 상처 받은 최성원은 마음을 정리하러 부산에 갔다가 불현듯 제주도행 밤배에 올라탔다. 제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음악을 하는 선배뿐. 그는 선배집에 머물면서 서울에 사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풍요를 누리는 선배의 딸 푸르매양을 만났다. ‘제주도의 푸른 밤’은 바다와 친구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푸르매양에게 선물한 노래였다.

 

록그룹의 베이시스트 최성원은 그가 만든 ‘그것만이 내 세상’과 ‘매일 그대와’ 등의 노래에서 볼 수 있듯이 보기 드문 감성의 소유자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인 아버지 최영섭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노래를 만드는 데 있어서 천재성을 보였다. 한때 록신에 베이시스트로 몸 담았지만 김민기와 조동진을 필두로 정태춘, 유재하, 조규찬, 유희열, 이적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포크음악 계보의 앞쪽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성원이 발굴한 이적의 음악에서 최성원의 그림자가 물씬 풍기는 것도 그런 이유다. 

최성원도 존경하던 선배 조동진처럼 제주도로 이주하여 라디오 DJ를 하는 등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와 음악적 맥을 같이하는 장필순, 이상순(이효리도 있다), 루시드 폴 등이 제주로 이주한 건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어느 해보다 더운 올여름에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떠나고 싶은 이들이 많았으리라. 노래는 어쩌면 상상 속의 일탈을 돕는 매개체가 아닐까.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