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은 평가절하된 싱어송라이터다. 따져보면 그의 ‘은둔형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잠실종합운동장에 수만명을 모아놓고 노래를 해도 모자랄 대형가수가 몇몇 술손님을 놓고 미사리에서 노래하고 있다니.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다. 그냥 좀 그렇다는 거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요즘 청춘들이 노래 때문에 여수 밤바다로 몰려간다면 1970년대와 80년대 청춘들은 이 노래 때문에 동해바다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래를 잡으러 가기보다는 사방이 꽉 막힌 현실에 대한 울분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 노래는 1975년 개봉했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OST 중 한 곡이었다. 최인호 소설가가 극본을 쓰고, 하길종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군입대를 앞둔 비루한 청춘들의 방황과 좌절을 소재로 했지만, 실은 유신정권의 폭압을 반항적 문법으로 그린 영화였다.
최인호는 ‘고래사냥’의 가사를 송창식에게 주며 답답한 현실에 얽매어 있는 청춘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노래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청춘들의 이상과 꿈을 ‘고래’로, 꿈을 좇는 여정을 ‘사냥’으로 치환한 노래였다. 송창식은 앉은 자리에서 뚝딱 노래를 만들었다. 그의 노래는 영화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최인호를 불러 ‘고래’가 의미하는 게 뭔지 추궁했다. 때마침 같은 영화의 OST인 송창식의 ‘왜 불러’가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주인공들의 도주 장면에 삽입되어 문제가 됐던 참이었다. 결국 이 노래는 ‘왜 불러’와 함께 금지곡으로 묶였다. 염세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금지된 것에 매력을 느끼던 청춘들에게 ‘고래사냥’은 시도 때도 없이 불리는 애창곡이 됐다. 대학가의 선술집에서, 엠티(MT)를 가던 기차 안에서, 때로는 시위 현장에서까지 불렸다. 당시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하길종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최인호도 이젠 없지만 그들이 그려낸 청춘의 벽화는 여전히 아름답다. 문득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를 들으며 바닷가를 걷고 싶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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