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 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요절한 김정호(본명 조용호·1952~1985)는 천재였다. 1974년 발표된 ‘이름 모를 소녀’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전에 이미 음악동네에서 인정받던 싱어송라이터였다. 이 노래는 그가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하던 선배의 사촌동생 이영희를 위해 만든 노래였다. 이 노래가 발표되자 짝사랑을 눈치챈 이영희가 명동 ‘쉘브르’에서 노래하던 김정호를 찾아가면서 연애를 시작, 3년 만에 결혼한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박동신 명창이 외조부였고, 외삼촌은 아쟁 명인 박종선, 어머니는 명창 박숙자였으니 음악적 혈통을 타고 난 셈이다. 집을 나와 우이동 골방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 만난 임창제와 김정호는 “우리가 음악으로 세상에서 1등을 한번 해보자”고 맹세했다. 결국 김정호가 만든 ‘작은새’와 ‘사랑의 진실’로 임창제와 이수영이 결성한 듀오그룹 어니언스는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그룹 4월과 5월의 멤버로도 활동한 김정호도 덩달아 레코드사의 표적이 됐다. 그는 지구레코드로부터 가수 겸 작곡가 전속계약 제안을 받았지만 유니버샬과 가수 계약만 하고 데뷔앨범을 냈다. 타이틀곡 ‘이름 모를 소녀’는 원래 양희은에게 주려고 만든 곡이었지만 김정호가 부르면서 당대 소녀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정애정은 예명을 정소녀로 바꾸기까지 했다. 오승근과 임용제가 만든 듀오 투에이스(금과은으로 개명)의 히트곡 ‘빗속을 둘이서’도 김정호의 곡이었다.
그러나 김정호도 대마초 파동을 피해 가지 못했다. 1976년 1월 가수 이종용, 송창식, 윤형주 등과 체포되어 1979년 말 해금될 때까지 가수활동을 금지당했다. 1983년 폐결핵으로 결핵요양원을 드나들면서 유작 앨범 <인생>을 만든 그는 1985년 11월 서른셋 나이로 눈을 감았다. 김정호는 치료가 가능했지만 음악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결핵요양원에서 뛰쳐나오곤 했다는 게 당시 매니저의 증언이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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