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구매 연령 분포도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출판사에서는 20대 독자를 타깃으로 만든 책의 판매 현황을 보며 정작 20대의 독자는 누구인지, 그 독서 성향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어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6월 도쿄의 메이지대학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출판인 콘퍼런스 ‘출판인은 20대 독자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주제에 발표를 맡게 되었다. 메이지대학의 어느 교수는 만화 텍스트에 익숙한 대학생들을 위해서 만화도서관을 운영하며 지식과 정보 교류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20대 독자에 대해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셈인데, 책을 만드는 사람이 자료 조사를 하는 가장 빠르고 익숙한 방식은 역시 해당 주제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은 작년 말 출간된 이래 40쇄를 넘게 인쇄한 화제작이다. 저자 임홍택은 정보경영 전공의 브랜드 매니저로서 많은 90년대생 20대들을 만나고 부딪치며 그들의 세계를 정리했다. 저자는 1981년 말 인구증가억제 종합시책이 채택되고 1985년 자녀 수에 따른 주민세, 의료보험료 등이 차등으로 부과된 정부 정책 결과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며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가 그 숫자를 바탕으로 강력한 소비층으로 성장한 것에 비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밀레니엄 세대’는 미국의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의 책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들은 정보기술에 능통하고 모바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생활화했으며 자기표현이 강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 취업과 소득분배에 민감하며 전통적인 금융사보다 개개인의 정보를 더 믿는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포획되지 않고 개인의 취향이 쏠리는 소비를 한다.
<90년생이 온다>는 20대를 간단함, ‘병맛’, 솔직함의 특징이 있다고 밝힌다. 줄임말을 상용하며 복잡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아예 쳐다보지 않으려는 성향이다. 또 불투명한 사회시스템의 작동에 반감이 크며, 오래된 권력 구조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직함을 우선가치로 여긴다.
이 성향이 책과 독자의 관계도 재설정하고 있다. 그동안 독서 행위는 메시지와 지식의 가치를 개인화하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20대 독자에게 독서란 좋은 의미로 하나의 패션이 되어가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관계의 연결 고리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 책 속의 메시지는 자신의 생각과 기분, 가치를 대변해주는 매개체다. 책이 물성을 지녔다는 점이 이를 거드는데, 그들은 책을 오브제로 바라볼 줄 알고, 취향을 투사하며, 그것을 SNS에 과감히 전시할 줄 안다.
‘함께 읽기’ ‘공유하기’라는 새로운 방식의 독서가 20대에게 자리 잡고 있다. 그들에게 독서란 더 이상 저자와의 내밀한 데이트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출판사나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독서 모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이 잘 이해된다. 그들에겐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확실한 현재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독서 인구는 줄어드는데 독서 모임은 늘어나는 아이러니가 현재 책이 어떻게 읽히는지 잘 보여준다. ‘책’에 방점이 찍혔던 전통적인 독서에서 ‘독서자’에 방점이 찍힌 독서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전의 독서에서는 책을 완독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엄숙함 내지 중압감이 앞섰다면 지금의 독서는 즐거움이 우선이다. 책이 만남의 계기를 마련하고 대화의 소재가 되며 다 함께 골라서 읽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므로 지나친 엄숙함은 방해가 된다.
개인을 성찰하는 방식이 아닌 놀이로서의 독서. 엄숙해서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이 모임의 주제, 이유가 되고 있다니 낯설고 새롭다. 한 측면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시대, 자신의 이야기를 독립출판물로 출간하고 또 스스로를 예비 저자라고 믿는 청춘이 늘어날수록 독자로서의 면모도 공고해질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무엇인가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이 읽어야 한다는 책의 순환 고리가 떠오르기에. 그들이 책을 공부나 일이 아닌 유희로 여겨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출판이야말로 그들과 기질이 맞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과 소신이 필요하고, 인연이 중요하며, 나부터 즐거워서 하는 분야 아닌가. 더 많은 90년대생 독자를 만나고 싶다. 쉬 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작아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줄 아는, 놀 줄 아는 그들과 즐거운 미래를 궁리하고 싶다. 책의 메시지보다는 우리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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