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 썸네일형 리스트형 말해서 말해지지 않을 것을 찾아서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화학을 사랑했던 한 청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거기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주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제, 운이 다한지도 모른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남았고, 수용소 생활에 버금가는 고난의 행군을 겪고나서야 귀향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증언해야 한다는 열망이 죽음의 망토를 거둬냈다. 마침내 썼다, 그 짐승의 시대를. 시적 영감으로 가득한 자서전()도 쓰고, 가혹한 고통을 담담하게 기록한 증언집( )도 펴냈고, 시집()도 소설()도 썼다. 그런데 그에게 남은 말이 있을까? 프리모 레비와 조반니 테시오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을 집어들며 떠오른 단상이다. 어쩌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괴롭지 않았을까 싶.. 더보기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사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무릇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남자는 오만하기 십상이다. 이 오만은 지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의 여성에게 편견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터 오르기보다 견원지간이 될 공산이 크다. 사랑의 방정식이 오묘한 것은, 어떤 계기로 우호적인 감정이 갈마들다보면 오만의 정도는 옅어지고 그만큼 편견도 줄어들어, 해(解)가 보인다는 점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제인 오스틴은 말하고 싶었다. 오만과 편견이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소란은 결국 오만과 편견이 충돌한 결과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양 설레발쳤다. 복잡미묘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 치고 사이비 아닌 바.. 더보기 실천하는 역사학자가 남긴 유언 “민족은 상상되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민족이라는 말에 양가감정이 들었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은 해방의 개념이었다. 이 한마디에 한반도의 청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에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무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민족의 적을 내세우면 하나로 뭉치기에는 좋지만, 그 한 뭉치 안에 그어진 균열과 갈등은 보지 못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한참 고민할 적에 읽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는 그야말로 눈을 가린 비늘을 벗겨주는 지적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책을 읽으며 혀를 내두르는 것은, 책과 신문으로 대표되는 인쇄자본주의와 민족주의 탄생의 관련성을 탐색해낸 주제의식과 더불어,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섭렵한 학문적 성실성.. 더보기 자식이 쓴 아버지 행장 “내가 태어날 때 서른 한 살이던 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농사꾼답지 않게 늘 뉴스를 듣고 신문을 정독했으며 틈나는 대로 붓글씨를 썼다.” 우일문의 를 읽고 인상 깊은 대목을 다시 읽다 이 구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무능하건만 자존심만 센 이기적 폭군. 어쩌면 나의 일생은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나는 아버지 삶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았다. 담낭암 판정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1년3개월을 건강하게 지냈다. 그러다 쓰러지셨다. 마약성 진통제로 견디면서 삶의 주변을 정리하셨다. 저자는 그때 문득 ‘죽음을.. 더보기 지식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가? 김승섭의 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자리는 한자로 위(位)라 한다. 이 한자를 파자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사람과 서 있다는 글자가 합해졌으니, 먼저 사람 옆에 서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 사람은 돈과 권력 있는 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람 옆에 설 때 비로소 얻는 지위가 있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에서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 전문가주의를 꼽았다. “생계를 위한 어떤 일을 하는 지식인의 활동”을 뜻하는데 “후원세력들이 가진 권력과 권위를 향한,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낳는 여러 자격들과 특혜, 그런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고용되는 것을 향한 불가피한 움직임”이라 했으니, 딱 맞춤한 사례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선 자리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독창..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