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행어처럼 대중의 시선을 ‘모아, 모아, 모아서’ 그가 돌아왔다. 1999년 SBS-TV ‘주병진의 데이트라인’ 이후 12년 만이다. 시청자는 그가 보여줬던 왕년의 저력을 기대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일, MBC-TV ‘주병진 토크 콘서트’의 뚜껑이 열렸다. 그 현장에서 주병진을 만났다.
지난해 여름, 주병진(53)은 MBC-TV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 관련 기사를 들춰보면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돼 있던 ‘좋은사람들’ 지분을 매각하던 2008년부터 방송사 측의 섭외가 시작됐다고 하니 만 3년 만에 성사된 것이었다. 1999년 이후 12년 만의 방송 출현에서 그는 예전의 활약을 소개하고 방송활동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방송 말미에 그는 연예계 복귀 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방송 후 그의 컴백 시점과 어떤 작품으로 컴백할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1990년대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주름잡던 당대의 최고 MC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6개월 동안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은 ‘주병진 토크 콘서트’. 조금은 의외였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은 다양한 변화를 맞았고 1:1 토크쇼는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주병진 쇼’, ‘주병진의 나이트라인’,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으로 한국형 1인 토크쇼의 장을 열었던 당사자이다 보니, 그가 토크쇼 프로그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12년간 움츠려 있던 그가 어떤 모습으로 포효할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멈춰있던 12년간의 시간 첫 방송을 며칠 앞둔 11월 28일, 주병진은 MBC 일산 드림센터에서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그는 나이가 든 탓에 인사할 때 소갈머리가 보일까 걱정된다거나, 노안이 와서 메모가 안 보일까 걱정된다며 농을 던졌다. 지나온 세월만큼 유연해졌는지, 긴장한 기색도 노련하게 감추었다. TV를 통해 그를 만나는 시청자를 위해 한마디 설명을 붙이자면,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얼굴이 작다는 점과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했다”라며 “덕분에 얼굴과 몸매를 젊은 시절 못지않게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천적 힘이었다. 사실 지난 12년간의 시간은 그에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시간이었다. 그 고통의 순간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 생을 끊는 방법’까지 생각했다는 주병진. 12년 만의 컴백 소감을 ‘첫사랑을 만난 느낌’이라든지, ‘냉동됐다 해동된 느낌’이라든지 하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간의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Q 12년 만의 방송 복귀에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A 몇 번의 10년을 살았지만 제 삶에서 지난 10년은 가장 긴 10년이었어요. 그 시간은 제게 멈춰진 세월이었죠. 이제 와 무대에 다시 서니, 마치 12년 전에 헤어졌던 첫사랑을 만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동안 미래가 없어 정말 막막했는데 무엇보다 제 삶에 희망과 목표가 생겼다는 데 스스로 큰 감동을 느낍니다. 요즘 의술이나 과학의 발달로 냉동인간 소생술이 실현될 거라고 하던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12년 동안 냉동인간이 되어 있다가 이제 해동이 되어 세상에 나왔는데, 세상이 다 바뀌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요.
A 세월이 이렇게 흐른 줄 몰았어요. 과거의 사건을 검색하고 어두웠던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시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제가 방송을 하지 않은 지 몇 년 됐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월이 이렇게 지나가버렸구나’ 싶었죠. TV도 보지 않으려고 했고, 또 되도록 많은 사람과 만나지 않으려고 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혼자서 여행을 많이 다녔죠. 그러다 보니 세월이 얼마큼 흐르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 없었다는 거예요. 마치 태풍의 핵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정적과 적막, 정지뿐이었죠. 그것이 얼굴에 그대로 표현됐어요. 그래도 죽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운동하면서 한 가닥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방송 출연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변에서 “요즘 몸도 좋아지고 얼굴도 밝아졌다.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어쩌면 (방송을 하면) 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얼굴에 얼음이 녹지 않았지만 그래도 온기가 느껴지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변화예요. Q 오랜 공백기만큼 복귀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컴백을 결정하시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냉동 상태에 있으면서 ‘빨리 얼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어요. ‘이렇게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산송장 같다’라는 느낌도 받았죠. 그 상태에서 ‘어떻게 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처음에는 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또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해외로 도피할 생각도 했었죠. 실제 미국 이민 수속을 밟다가 집에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고 이런 게 더 불효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어요. 생을 스스로 끊는 것도 생각했었죠. 결국 남은 것은 제가 이렇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인 매스미디어를 통해 냉동 상태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어요. ‘주병진 토크 콘서트’, 지금 해동 중 12월 1일 11시 5분,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야심차게 시작됐다. 시청률도 8%를 넘어서며 그간의 관심을 입증했다. 방송분에서 주병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재치 있는 입담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병진은 변함이 없었다. 차분한 말투와 허를 찌르는 개그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의 진행 솜씨는 여전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변화했다. 시청자들은 서바이벌의 긴장감을 즐기고 예능감 충만한 개그가 ‘빵’ 터져야 웃는다. 2회가 방송되면서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이러한 현상은 3회까지 이어졌다. 12월 22일 방송될, ‘김창완 편’에서도 시청률의 반전을 기대해보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굳은 심지를 보였던 그지만 추락하는 시청률 앞에서 마냥 의연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또한 이러한 고전을 전혀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겨우 3회 방송분의 시청률만으로 실패와 성공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기엔 1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에게도, 그 긴 시간 동안 그를 기다린 팬들에게도 너무 억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몸의 각 부위에 아직 얼음이 남아 있어 서걱거린다”라던 그의 말처럼 ‘주병진 토크 콘서트’가 제대로 몸을 풀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국형 1인 토크쇼에 애착을 갖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Q 이미 다양한 형태의 토크쇼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기존의 포맷을 그대로 응용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다른 프로그램과 어떤 차별성을 둘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A 그런 프로그램을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재미있게 봤지만 의외로 정통 토크쇼의 형태는 사라진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으로 단순히 옛날 것을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이런 장르는 불변한다’, ‘이것이 정통 토크쇼다’ 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자체로도 지금 이 시대에는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요? 좀 더 예의를 갖춘 콘서트를 만들고 좀 더 자극적이지 않은 토크쇼를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시청률과 싸움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A 당연하죠. 그동안 KBS-2TV ‘해피투게더3’와 대결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당대 최고의 MC와 대등하게 비교된다는 것은 10년 넘게 쉬었던 사람에게는 영광이 아닐 수 없죠. 그렇지만 서로 컨셉트가 다르기 때문에, 축구와 야구 중 어떤 것이 이길까 하는 단순한 비교는 무리인 것 같아요. 결국 시청률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분들이 많지만 그 시청률 때문에 방송의 본질이 퇴색되면 안 되겠죠. 자극적인 것으로 시청률만 올리려다 보면 방송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아요. 만약 당대 최고의 MC와 내가 맞대결을 한다면 그 맞대결은 다른 잣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주병진 토크 콘서트’의 기본 구성과 기획 의도가 시청률 하락으로 조기 종영된 KBS-2TV의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A 시청률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이 빨리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에요. 그렇게 되다가는 자극적이고,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만 남을 수도 있어요. 시청자는 왜곡된 가치만을 받아들이게 되겠죠. Q 그렇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가요? A 물론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관해 많은 시청자가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또 그런 것을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초대 손님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교훈이 되거나, 함께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해요. 외부 노출을 꺼리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 일반인 중에서도 우리에게 뜨거운 이야기를 전해주실 분들을 많이 초대하고 싶어요. 1993년 방송된 ‘주병진 쇼’의 출연자를 살펴봤다. 최배달, 김춘삼, 정주영 회장 등 아련한 이름들이 보이고 오세응과 이부영 의원 같은 정치인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연예인으로는 아직까지도 핫이슈를 장식하고 있는 최민수와 심수봉이 출현했다. 김응룡 감독과 이종범 선수의 이름을 보니 그날의 방송이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대중이 지금의 그에게 왕년의 ‘주병진 쇼’를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의 유재석과 강호동을 기대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재치 있는 입담과 순발력 있는 진행 솜씨가 제대로 물을 만나 활개 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주병진 토크 콘서트’의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구성을 대대적으로 손볼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가 뜻하는 ‘예의를 갖춘 프로그램’의 울타리 안에서 좀 더 시청자의 입맛과도 부합되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제공 / 박동민,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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