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말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미국 록밴드 C.C.R의 첫 내한공연이 펼쳐졌다. 창단 멤버인 베이시스트 스튜 쿡을 중심으로 20여년 만에 재결성되어 한국을 찾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 공연 외에는 문호를 잘 열지 않던 시절이었다. 첫 곡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 곡까지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다. 청바지 입은 노장 멤버(?)들은 열정적으로 1970년대를 재연했고, 통기타와 생맥주, 장발의 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넥타이부대들도 모처럼 열광했다.
C.C.R은 누구인가? 조영남이 ‘물레방아 인생’으로 번안해 불렀던 ‘프라우드 메리’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코튼 필즈’ 등을 부른 밴드였다. 그들의 히트곡 중 하나인 ‘수지 큐(Susie Q)’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주일을 기억하는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곡이다.
‘오 수지 큐, 오 수지 큐. 오 수지 큐, 베이비 아이 러브 유 마이 수지 큐’.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이 노래에 맞춰 특유의 오리춤을 추면서 무대에 등장했던 이주일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그의 무대 덕분에 ‘수지 큐’가 1980년대에 다시 소환된 것이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도 유명하지만 이주일을 생각하면 언제나 ‘수지 큐’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슈지 큐’는 C.C.R의 2집 앨범 <필모어 웨스트(Fillmore West)>(1969)에 수록된 곡이다. 미국에서도 이들의 노래는 1960년대와 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영화인들에 의해 자주 소환됐다. 1979년 제작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서 월남전 위문공연을 온 본토 플레이걸들이 병사들과 함께 온몸을 흔들 때 나오는 곡이 ‘수지 큐’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악단을 이끄는 정진영은 남편을 찾아 월남에 온 수애에게 ‘수지 큐’를 연습시키라고 말한다.
이처럼 ‘수지 큐’는 올드세대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지만 지금 들어도 여전히 신나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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