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말을 건다, 캐릭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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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한창완의 문화로 내일만들기

캐릭터가 말을 건다, 캐릭터 에세이

지상파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는 ‘윌슨’이라는 곰인형이 매회 출연한다. 혼자 사는 출연자의 집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혼잣말을 들어주고,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리액션도 곧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윌슨의 눈에 있는 카메라는 윌슨의 시선으로 혼자 사는 출연자의 외로움과 무료함을 지켜봐준다. 윌슨은 그 시선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곰돌이 푸’를 주인공으로 하는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가 2018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집계되었다. 20~40대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55만부나 팔렸다.

 

올해 93세가 되는 ‘곰돌이 푸’는 본래 영국의 동화작가 A A 밀른의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주인공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흑곰 새끼 1마리를 20달러에 산 해리 콜번 중위가 자신의 고향 캐나다의 위니펙에서 따온 ‘위니’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대 마스코트로 키웠다고 한다. 이후 콜번은 부대가 이동하게 되자 안전상의 이유로 ‘위니’를 런던동물원에 맡겼다.

 

이 곰을 보러 동물원에 자주 왔던 소년이 작가 밀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었고, 휴일에 봤던 백조의 이름 ‘푸’를 따서 작품의 제목이 완성되었다는 탄생 비화가 전해진다. 린제이 매틱의 동화 <위니를 찾아서>에서 그 사실을 설명한다. 작가 밀른에 의하면 본래 ‘위니’였던 곰이 ‘곰돌이 푸’가 된 이유는 푸의 팔이 너무 뻣뻣해서 파리가 코에 앉았을 때 ‘푸’하며 불어 날려보냈기 때문이다. 동화작가의 동화같은 이유다.

 

위로받고 싶은 힘든 일상들이 캐릭터를 소환한다. 캐릭터가 혼자 살거나 혹은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듯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그런 캐릭터가 우리 주위에 많이 함께 산다. 인터넷으로 메일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며, 사진으로 일상을 공유해 우리는 모두 가깝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그렇게 가깝지 않은 일상의 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라도 그런 억울함과 어이없는 기분을 토로하며 위로받기를 원한다. 그때 말 없는 캐릭터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준다. 그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먹먹해진다.  

 

<왜 스누피는 마냥 즐거울까?>라는 에세이는 부제가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나를 위한 심리학’이다. ‘스누피’가 주인공인 만화 <피너츠>의 원작자 찰스 M 슐츠의 캐릭터들은 찰리브라운, 패티, 라이너스, 스누피와 함께 조금씩이라도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우리 모두 다 그래”라며 일상을 공유한다.

 

요즘 이러한 책들이 봇물처럼 서점가에 등장하고 있다. 일본 만화 캐릭터 ‘보노보노’가 들려주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도 잔잔한 ASMR처럼 대사를 읊고, 올해 90세가 되는 ‘미키마우스’도 <미키마우스, 나 자신을 사랑해줘>라며 등을 토닥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 너만의 길을 그려봐>라며 ‘아직 세상에 참 서툰 우리에게’라는 부제로 공감을 보여준다.

 

캐릭터는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성인이 되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뒤돌아보며 늘 후회하는 중년의 삶을 캐릭터는 똑같은 표정으로 늘 다르게 위로한다. 이제 국가에서도 ‘위로부’ 장관을 임명해서 친근한 캐릭터 홍보대사들과 함께 근무시켜야 된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누군가가 제안하는 그런 날도 올 듯하다. 이제 국가에 힘든 국민에게 위로까지 해달라면 지나칠까? 실제 그 정도로 모두가 국가만 쳐다보고 사는 힘든 연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캐릭터들은 묵묵한 무표정으로 말을 건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