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 갓 스물한 살의 히피청년이 무대에 섰다. 전주도 없이 느닷없이 토해내는 노래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대중잡지에서는 ‘한국 땅에 첫 히피 상륙’이라고 썼다. 훗날 송창식은 그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작곡을 시작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막 귀국한 한대수는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등 파격적인 노래들을 선보였다. 뉴욕사진학교에 다니면서 틈만 나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가서 잭슨 폴락의 추상화를 감상하던 청년이 외롭고 답답할 때마다 쓴 노래들이었다.
그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할아버지 한영교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 신학대학장까지 지낸 엘리트였다. 그의 부친 한창석은 서울공대 재학 중 미국 코넬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핵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한대수가 7살 때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재가했고, 그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는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한대수가 17세가 되던 해, FBI가 아버지를 찾아냈다. 아버지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하워드 한’이라는 이름으로 백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다시 미국에 간 한대수는 뉴햄프셔대학교 수의학과를 거쳐 뉴욕사진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노래들은 태평양을 오가며 사춘기를 보내야 했던 청년의 내면 풍경이다. 첫 음반 <멀고 먼 길>(1974년)과 2집 <고무신>(1975년)으로 한국 포크음악사의 역사를 썼지만 군부정권이 금지곡으로 낙인찍어 그를 다시 미국으로 내몰았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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