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방탄소년단의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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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방탄소년단의 시그널

유튜브 홈페이지에서 ‘BTS SEWOL’을 치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봄날’ 해설 영상이 나온다. ‘봄날’에 나오는 버려진 옷가방과 산더미처럼 쌓인 옷, 녹슨 놀이기구, 놀이기구에 붙은 노란 리본, 나무에 걸린 운동화가 세월호 참사를 은유한다는 것이다. 이 영상에는 생존자의 증언, 촛불시위, 세월호 유가족,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언론도 등장한다. 영상을 만든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외국인 팬이다. 

 

대체, 이 놀라운 방탄의 팬들은 누군가? 뉴스에 묻혀 사는 기자도 ‘봄날’을 처음 들을 때는 친구나 연인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연가인 줄 알았다. 방탄이 ‘빌보드 200’에서 1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방탄의 팬덤인 ‘아미’다. 해외 아미들은 비영어권 노래를 모르는 현지 라디오 DJ에게 선곡 요청 매뉴얼까지 만들고, 방탄의 노래가 방송에 소개됐을 때 DJ에게 감사 인사와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단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철학자 이지영은 <BTS 예술혁명>이란 책을 내고 방탄과 팬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문화·미학적 변화를 ‘방탄 현상’이라고 했다. 국어학자 한성우는 <노래의 언어>와 작가 박지원은 <아이돌을 인문하다>에서 방탄의 노랫말을 분석했다. 학자들이 대중문화를 소재로 책을 낸 적은 종종 있었다. 가장 유명한 책은 2003년 슬라보이 지제크 등 세계적인 철학자 17명이 영화 <매트릭스>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글 15편을 묶어 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란 책일 것이다. 플라톤, 도스토옙스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레비-스트로스, 아도르노, 라캉, 사르트르,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과 작품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설명했고, 기독교와 불교 이론을 분석틀로 사용하기도 했다. <매트릭스>를 놓고 철학자들이 이처럼 다양한 분석을 쏟아낸 것은 블록버스터를 넘어 철학적·사회적 함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학자들이 방탄을 주목한 이유도 좋은 멜로디와 칼군무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뭔가 세계와 통한 방탄의 시그널이 있다는 거다.

 

철학자 이지영은 질 들뢰즈의 리좀 이론으로 방탄현상을 설명한다. 리좀은 뿌리 줄기 또는 뿌리 식물이다. 뿌리와 가지로부터 영양분을 받는 수직적 구조인 나무 기둥과 달리 리좀은 수평적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뿌리와 연결하며 성장한다. ‘이 체계에는 거대 자본이나 이와 연계되어 있는 미디어 권력 같은 단일한 권력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미와 방탄은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라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BTS 예술혁명)

 

SNS나 유튜브로 스타의 일상을 내보낸다고 해서 이런 팬덤이 형성될 수는 없다. 일부는 청년의 고단한 현실이 담긴 사회성 짙은 노래를 팬덤의 뿌리로 본다.

‘금수저로 태어난 내 선생님/ 알바 가면 열정 페이/ 학교 가면 선생님/ 상사들은 행패/ 언론에선 맨날 몇 포 세대….’(뱁새)

 

‘약육강식 아래/ 친한 친구도 밟고 올라서게/ 만든 게 누구라 생각해 what….’(N. O)

청년의 암담한 현실을 노래한 아이돌은 많다. 빅뱅의 ‘루저’, 에프엑스의 ‘레드 라이트’, 슈퍼주니어의 ‘돈돈’, 엑소의 ‘마마’ 등도 사회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방탄의 노래 중엔 사회비판적 내용이 다른 아이돌에 비해 더 많은 편이긴 하다.

 

다른 입과 다른 귀를 가진 사람들이 공명하려면 서로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이것은 개인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2016년 이화여대생의 대학 점거 농성 당시,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였다. 군부독재시대에 태어난 386세대는 1980년 광주항쟁 후 탄생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과 분리해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다만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태어난 이대생들은 살아온 정치·경제·사회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시민사회단체의 개입과 연대를 거부하고 ‘모두 알고 있는 노래를 찾다가’ ‘다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음악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각인된다.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치매환자, 뇌 기저핵이 망가진 사람도 음악에 반응한다. 그래서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했다.

 

대중음악은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분석틀이었다. 음악성, 정치성, 사회성, 팬과의 ‘소통성’까지 중요한 시대인 것은 틀림없다. 사람들이 방탄, 방탄할 때조차 BTS의 시그널이 잘 잡지 못하던 내 귀에 쏙 들어온 노래가 있다. ‘귀가 있어도 듣질 않어/ 눈이 있어도 보질 않어….’(Am I Wrong?)

 

<최병준 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