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희의 미디어큐비즘] 내가 키운 스타 하나 열 아이돌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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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정준희의 미디어큐비즘] 내가 키운 스타 하나 열 아이돌 안 부럽다

정준희 junehee.jung@gmail.com


바야흐로 '슈스케' 열풍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특징이자 저력은 처음엔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막판에 폭발한 다음 끝난 뒤에도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데 있다. 
허각과 존박 사이에 벌어진 1-2위 표차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다소 생뚱맞은 어투로 진지하게 비판하는 이도 있다. '슈스케'라는 명칭을 듣고 사뭇 진지하게 '왜색'을 운운하던 내 지인은 그게 '슈퍼스타 K 2'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머쓱해 하더니만, 대뜸 요즘 세대의 그릇된 줄임말 세태로 화살을 돌리는 처량한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위 '슈스케'가 두 번째 시즌에 이르러 한국 대중문화 속에 안착하게 된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슈퍼스타 K 2>는 좋게 말하면 포맷 번안 프로그램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골적인 모방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 K 2>를 보면서, 미국에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아메리칸 아이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아메리칸 아이돌> 역시 영국에서 방영된 <팝 아이돌>을 그대로 미국에 이식시킨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슈퍼스타 K 2>는 포맷을 수입하지 않았고 <아메리칸 아이돌>은 포맷은 물론 사이먼 코웰이라는 신랄한 영국인 독설가도 수입했다는 점이다.






물론 <슈퍼스타 K 2>를 제작한 엠넷이 그와 같은 해외 프로그램의 존재를 몰랐을 리는 전혀 없다. 미국 프로그램이나 일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껴서 한국 텔레비전에 올려놓는 행태를 지금 같은 '글로벌 동기화' 체제에도 반복하고 있을 멍청한 제작자가 한국 방송계에 버젓이 남아 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륙의 짝퉁 문화'를 비웃던 한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던 새우깡과 빼빼로가 일본 상품을 마치 복사기로 본을 뜨듯 거의 똑같이 모방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참담함 덕분일지는 몰라도, 여하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적어도 낯 두꺼운 베끼기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거의 지났다고 믿고 싶다.


성공한
해외 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하는 건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특정한 아이디어가 과연 시쳇말로 '대박'을 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쪽박'을 찰 수도 있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언필칭 문화산업이다.
성공한 프로그램 포맷은 그와 같은 위험도를 절반 이하로 감소시켜주며,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지난한 과정에 투자되어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포맷을 수출해주는 쪽은 마치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의 본사처럼 노하우를 전수하고 매장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편리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는 글로벌 저작권 시장에서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는 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무시무시한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의 성향이라든가 규제기구의 심의 수준 등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이 전혀 다른 지역에서는 원본의 포맷을 빌려오되 그것을 유연하게 현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좋다.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성공한 프로그램 포맷을 들여오는 데에는 또한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 예컨대 위험도를 크게 줄여준다고는 해도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닳고 닳은 저작권 소유자가 제시하는 조건이 수입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더욱이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는 이들의 관심은, 이 또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그렇듯, 포맷 수입자에 대해 최대한 큰 통제력을 발휘하는 데 있다.

수입해간 측에서 원 프로그램의 틀을 멋대로 변형해서 상품의 통일성을 망쳐놓지나 않도록 감시하고 수시로 개입한다.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 포맷을 적절히 현지화시키는 과정이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Mnet ‘슈퍼스타K2’ 결선 무대에서 우승한 허각이 축하 꽃다발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Mnet /스포츠칸




글로벌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포맷은 스타 탄생 프로그램인 <팝 아이돌>, <브리튼스 갓 탤런트>, <프로젝트 런웨이>나 엿보기 프로그램인 <빅브라더> 등과 같은 리얼리티 쇼 장르에 집중되어 있다.
대개 일반인의 참여를 통해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논란과 이슈를 유발하며, 이것을 다른 대중매체가 받아주면서 사회적 시선과 대화를 증폭시키는 것이 핵심
이다.
시청자들이 특정한 등장인물과 맺는 ‘일체감’은 안정적인 시청자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더러, 이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짭짤한 부대수입까지 발생시킨다. 그리하여
시리즈가 거듭되는 동안 이와 같은 리얼리티 쇼는 일종의 국민적 행사처럼 발전한다. 영국에서 여름 휴가철 동안 떨어지게 마련인 텔레비전 시청률을 <빅브라더>가 붙잡아주는 메커니즘도 그런 특성을 활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로벌 히트 포맷은 유독 한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의 리얼리티 쇼는 대개 일반인의 참여에 의해서보다는 연예인끼리 ‘패밀리’를 띠워 ‘1박2일’ 동안 ‘무한도전’하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형태로 굳어졌고, 오디션 방식의 스타탄생 프로그램은 이미 로컬 시장에서 검증된 준연예인급 일반인들의 ‘스타킹’ 장기자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름의 이유인즉슨, 심판관들이 던지는 멘트가 유럽처럼 신랄하기도 어렵고, 일반인 워너비 스타들의 탤런트풀이 미국만큼 넓고 다양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드디어 슈스케가 떴다. 게다가 케이블 채널로서는 대박을 넘어 초대박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해외 포맷인 <아메리칸 아이돌>보다는 한국적 스타탄생 포맷인 <전국노래자랑>을 좇은 선택이 주효했고, 스타 지망생들의 실력은 물론 눈물샘을 자극하는 개인사를 적절히 배치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누군가는 설명한다.

하지만 휴대폰 세일즈맨 폴 포츠의 ‘넬라 판타지아’가, 그리고 볼품없는 외모를 지닌 수전 보일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이 반드시 압도적인 가창력만으로 입상하여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아니다. 코니 탤벗이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 또한 예쁘고 앙증맞은 꼬마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이른바 천상의 목소리가 되어 한국의 스타킹에까지 울려 퍼지게 된 셈이 아닌가. 




제목 MBC ‘무한도전’팀이 ‘도전 WM7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MBC /스포츠칸




결국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스타 탄생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그 포맷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게서 왔는지 <전국노래자랑>에게서 왔는지가 아니라, 개인적 역량과 사연 그리고 판관들의 날카로운 선구안이 어울려 특정한 종류의 성공 스토리 라인을 빚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단순히 ‘준비된’ 스타를 추인하기보다 ‘만들어져 가는’ 스타를 보고 싶어 하며, 그들의 ‘발전하는’ 캐릭터, 아니 심지어 ‘내손으로 만들어준’ 진행형 캐릭터와 함께 웃고 울고 떠들길 원하는 것이다.

물론, (영예의 1위 당선자 허각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행여나 지금 형성되어 있는 유대가 앞으로도 영원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다.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의 사연에 공감하며, 슈스케를 안 보는 지인들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날려 내 손으로 키워주고 싶은 워너비 스타는 또 다음 시즌에 어김없이 찾아와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