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라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소위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빅3가 이끄는 우리의 팝스타들이 아시아에서 구름 같은 팬을 몰고 다니고 있고 서서히 유럽과 미주에도 이름을 내밀고 있다. 물론 한류는 대중음악만이 이끄는 것은 아니다.
영화산업과 TV 드라마 등도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음악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묘한 경쟁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우선 한국 내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한국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외국의 ‘팝송’이 라디오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약 95%를 한국음악이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의 할리우드와 피 흘리는 경쟁을 하고 있고, 외국 스타에 대한 우리 팬들의 열정이 식지 않고 있다. 사실 우리의 K팝은 세계 음악시장을 두어 개의 국가와 함께 분할 점령하고 있는 가공할 만한 경쟁력이 있다. 대체 이러한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해답을 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서 얻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 대표는 한국 K팝의 세계적 성공 비밀을 꿰뚫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가 대표로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기획사의 주요 시설 투자라는 것이 녹음실과 연습실 같은 간단한 공간과 장비였고, 사무실과 같은 딱딱한 업무공간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문화산업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산업은 큰 투자가 필요 없는 산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기획사 대표의 K팝 성공 비결을 들으면서 바로 교정이 됐다. 그가 설명한 한국 대중음악 성공의 비결은 바로 미래의 스타라는 인적자원에 대한 장기적이고 치밀하고 제대로 된 과감한 투자였다. 투자의 목표는 물론 금전적 수익이지만 인적자원 개발의 목표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을 하는 스타의 양성이다. 노래와 댄스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외국어 교육 및 다양한 교육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인적자원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작은 한국음악시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화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가 이 산업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호주 퍼스에서 열린 ‘2K13 필 코리아’ 콘서트 무대에서 에일리가 열창을 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 비해서 대중음악 인적자원에 이렇게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이들 인적자원을 미국과 달리 회사가 직접 소유할 수 있었고, 둘째, 회사가 인수·합병 위협이나 주주의 눈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소유·경영구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가 인수·합병 위협이나 주주에 대한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경영진은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보다는 단기적 이익과 자리보전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장기적 투자를 강조하는 경영방식이 예전 독일과 일본의 경제 기적의 비결이라고 한때 칭송을 받았는데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에서 다시금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K팝은 정부의 보호와 육성이 아닌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자생적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근본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독일과 일본식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한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을 외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특성이 다 좋은 것은 아니고 특히 스타를 포함한 고용인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그 기획사 대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흔히 한국은 가진 것이 인적자원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우리가 정작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같이 각각의 분야에서 철학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서 장기적이고 계획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적자원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교육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는지. 국가를 혁신하는 큰 방향은 바로 각 분야에서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는 것이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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