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 쟨쉬(Bert Jansch)와 펜탱글(Pentangle). 영국 포크/포크 록의 정점에 있던 뮤지션들이었다
포크가 영국에서도 명확한 조류였다면, 영국의 포크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영국의 포크도 미국의 포크 붐을 보고 나타났다기보다는, 미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가 지나간 포크 넘버들을 미국에서 수집했었다면, 영국의 포크 음악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의 방송이었던 Country Magazine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의해서였다.
영국의 포크도 미국의 포크 붐을 보고 나타났다기보다는, 미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가 지나간 포크 넘버들을 미국에서 수집했었다면, 영국의 포크 음악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의 방송이었던 Country Magazine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의해서였다.
예전에, 국내 라디오 방송 중에서도 북한의 노래를 보내 달라고 청취자들에게 요청하던 프로그램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슷하게 이 프로그램도 청취자들에게 예전 전통 노래를 보내 달라고 했던 것이다. (뭐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랄까) 그에 대한 예상 외의 뜨거운 반응은 곧 영국의 대중 음악에 트래디셔널 음악의 수용을 가져왔다, 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사실, 어느 나라에나 포크(민속) 음악은 존재할 것이고, 적어도 축음기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던 20세기는 음원의 녹음 및 기록이 손쉬워진 시기였던 만큼, 포크 리바이벌은 어떤 면에서는 예정된 사건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노반(Donovan)은 밥 딜런에 대한 영국의 대답이라고도 불렸던 뮤지션이다. 물론 그의 음악과 밥 딜런의 음악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도노반(Donovan)은 밥 딜런에 대한 영국의 대답이라고도 불렸던 뮤지션이다. 물론 그의 음악과 밥 딜런의 음악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딜런이 ‘텁텁한’ 느낌으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노래를 불렀다면 도노반은 동화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을 보여 주는 노래를 했다고 할 것이지만, 영국 포크에 있어서 도노반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데뷔작인 “What's Bin Did and What's Bid Hid” 의 성공 및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의 연주로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도노반은 영국의 소위 ‘플라워 칠드런’(혹자는 ‘멋쟁이 거지’ 라고 하기도) 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포크 록이 어쿠스틱 포크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도노반 또한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였고, 포크와 블루스는 물론 사이키델릭 록까지 포괄하는 작품이었던 “Sunshine Superman” 을 발표했다.
이 동네의 뮤지션들이 60년대에 으레 동양적인 것에 빠졌듯이(일단 비틀즈를 생각해 보자), 인도의 마하리쉬 요기(Maharish Yogi)의 명상 사상에 심취하여 “Hurdy Gurdy Man” 같은 자아 성찰적인 음악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의 ‘밝은 포크’ 를 대변한 것이 도노반이었다면 ‘어두운 포크’ 에는 닉 드레이크(Nick Drake)가 있었다.
캠브리지 대학의 무도회에서 뒤에 등장할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의 애쉴리 허칭스(Ashley Hutchings)의 눈에 띄어 데뷔하게 된 닉 드레이크는 대중들에게는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74년에 요절한 이후에는 꾸준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건이라면 2000년 폴크스바겐의 자동차 광고에 드레이크의 ‘Pink Moon’ 이 사용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광고 이후 한 달 동안 팔린 앨범의 수가 드레이크가 30년 동안 판매한 앨범 수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라이브와 인터뷰를 꺼렸고, 평생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드레이크의 음악은, 그 만큼 예민한 감수성에 포크를 중점으로 하여 재즈, 클래식 등의 요소를 정교하게 배치했던, 기존의 팝의 컨벤션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고 훗날 큐어(The Cure)의 로버트 스미스 같은 이들이 영향을 인정하는 등 이후의 뮤지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은 국내에서는 그냥 ‘영국의 1세대 포크 밴드’ 정도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 출신으로 ‘포크’ 와 ‘록’ 두 부분에 고루 주목했던 밴드의 하나였다.
사실 밴드가 1967년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추종자들로 결성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건대 다소 의외이긴 하나, 데뷔작 이후 트래디셔널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에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포크 록 밴드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뒤에 가일즈, 가일즈 앤 프립(Giles, Giles and Fripp)과 트레이더 혼(Trader Horne)에 참여하는 주디 다일(Judy Dyle)은 물론, ‘브리티쉬 포크의 마녀’ 라고도 불리는(왜 다른 표현 놔 두고 굳이 마녀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샌디 데니(Sandy Denny)가 참여하기도 했다.
샌디 데니와 애쉴리 허칭스는 이후 좀 더 포크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을 하기 위해 포더링게이(Fotheringgay)와 스틸리 스팬(Steely Span)을 결성하여, 60년대 말부터 이어지는 일렉트릭 포크와는 다른 전통적인 음악을 추구하였다.
그 외에도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Incredible String Band)는 65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전통 포크 사운드에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접목시킨 음악을 들려 주었던, 소위 ‘히피 포크’ 를 이끌었다. 닐 영(Neal Young)과 지미 페이지가 영향을 인정했던 버트 잰쉬(Bert Jansch)와 그의 밴드였던 펜탱글(Pentangle)은 영국 포크에 블루스/재즈의 양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일랜드 포크의 전통을 계승했던 밴드들도 물론 존재했다. 엔야(Enya)가 활동하기도 했던 밴드인 클리나드(Clannad) 같은 이들이 그 대표격일 것이다.
영국의 포크가 미국과 확실히 틀렸던 점은 미국의 포크 및 포크 록에 비해 오랜 역사적 배경 및 풍부한 유산을 배경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시대적 구분의 모호함은 물론이며, 이후 미국에 비해서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히피의 시대 이후 미국의 포크 록은 점차 사이키델릭 록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의 경우에서 보이듯 사이키델릭한 밴드도 있었다.
샌디 데니가 있었던 스트롭스(Strawbs)나 스파이로자이라(Spirogyra)는 통상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에서 얘기되는 밴드이다. 또한 위에서 얘기했듯이, 샌디 데니와 애쉴리 허칭스와 같은 정통적인 포크의 모습을 지켜 가는 뮤지션들이 있었고, 이러한 모습들은 1980년대 펑크의 폭발 이후에도 빌리 브랙(Billy Bragg)이나 포그스(The Pogues) 같은 이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당장 페어포트 컨벤션이나 펜탱글, 스틸리 스팬 등이 아직도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바,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장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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