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K팝 시상식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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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K팝 시상식을 앞두고

올해의 인물은 누구일까,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이었나 등 연말이 되면서 한 해를 결산하는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중문화에선 단연 K팝 소식이 많다. 어느 분야보다도 숨가빴던 한 해였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최고의 노래 65곡’을 발표했는데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노래가 뽑혔다. 블룸버그통신도 ‘올해를 빛낸 50인’을 선정했다. 방탄소년단은 비즈니스, 금융, 정치, 과학기술 분야 등을 망라한 세계 50인 중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포함됐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진행된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제2의 한류 붐을 이끌고 있는 K팝 덕분에 대중음악 기자들도 바빴던 한 해다. 빌보드 등 해외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라 선전한 K팝 아티스트들의 활약상을 두고 기사경쟁이 치열했다. 외신 기자들도 어느 해보다 ‘K팝’이란 단어를 많이 썼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기대됐던 그래미 어워즈의 신인상(The Best new artist)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마저도 이유를 분석한 외신들이 나오고 있다. 포브스는 이미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레코딩아카데미 소식통을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이 “올해 두 장의 ‘톱 40’ 앨범과 몇 년 전 여러 미국 차트에 오른 소수의 다른 앨범들로 서구에서 유명해져 신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신인상 후보에 지명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기사를 내놨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 가요를 담당하고 있을 때와 요즘을 비교해보면 사실 비교가 잘 안된다. K팝의 대중성과 그 위상이 가히 눈부시게 달라졌다. 당시엔 K팝이란 단어조차 쓸 생각을 못했다. 2001년에 만 14세의 보아가 일본에 데뷔할 당시 동행 취재를 갔다. 보아는 일본 도쿄의 대형클럽 벨파레에서 아시아 지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쇼케이스를 열었다. 나중에 ‘K팝의 원조’ 중 하나로 불리게 될 보아의 무대를 보며 ‘한국 가수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고생만 하다 돌아오면 어쩌나’ ‘J팝 가수가 되는 것 아닌가’ 하며 우려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 후반 ‘한류’가 시작됐지만 한류는 물론이고 K팝이 지금처럼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K팝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세계 음악시장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해외시장조사기관 PwC 자료를 보면 세계 음악시장 규모는 지난해 490억달러로 추정된다. 202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3.5%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음악산업 규모는 2015년 기준(한국콘텐츠진흥원) 세계 11위지만 2020년엔 중국에 이어 8위에 오를 것으로도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스피커의 등장으로 특히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K팝의 성장을 보여주듯 멜론뮤직어워드, MAMA(Mnet Asian Music Awards·마마) 등 굵직한 대중음악 시상식도 자리 잡았다. 올해 한국, 일본, 홍콩 3개국에서 열리는 마마는 2009년 ‘아시아의 그래미상’을 목표로 내걸며 마카오에서 첫 행사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싸늘한 시선이 많았다. 아시아의 허브가 돼 세계시장의 발판이 되겠다는 포부가 황당하게 받아들여진 때문이다. CJ ENM에 따르면 그간 마마는 전 세계 186개국에 중계됐다. 참여한 총투표 수는 3억5000만건, 동영상 조회수 190억뷰의 기록을 세웠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아시아 최고의 음악시상식으로 도약해 아시아음악이 전 세계의 주류가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가 과장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초창기 한류가 몇몇 뛰어난 작품과 아티스트, 기획·제작사에 의해 주도됐다면 지금은 인터넷 플랫폼 등 다양한 인프라가 함께 시너지를 내며 이끈다. 특히 K팝은 미국 등 주류 시장에서의 성공 못지않게 아시아의 영향력이나 ‘판’을 키우는 열쇠를 쥐고 있다. 해외 뮤지션들이 국내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열린 대중음악 시상식 ‘2018 MGA’에서 미국의 아티스트 찰리 푸스는 베스트 해외 아티스트상을 받으며 방탄소년단과 합동공연도 펼쳤다.

 

공들여 띄운 K팝 열풍이 더 생명력을 가지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우리도 미국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나 그래미 어워즈처럼 권위 있는 시상식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도 그중 하나다. 올해 K팝 스타들만 믿고 생겨난 신생 시상식까지 포함해 크고 작은 시상식만 10여개에 달한다. 소모적인 양적 팽창과 무리한 경쟁은 K팝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K팝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팬, 제작사, 시청자 등의 피로도가 높다. 업계에선 시상식이 어떻게든 통합·정리돼야 하고 공신력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성공과 세계적 관심에 올라타 당장 각자 챙길 것에만 몰두하다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김희연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