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레옹의 소녀, 블랙스완서 여인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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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토크]레옹의 소녀, 블랙스완서 여인 되다


김인아 기자    출처: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씨네토크] 관능미 물씬한 흑조로 아카데미 거머쥔 포트만

참 묘하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여전히 영화 ‘레옹’에서 킬러를 사랑한 13살의 소녀, 마틸다에 멈춰있었다. 30여 편의 후속작에서 영국왕을 유혹하는 앤 볼린(천일의 앤) 등 다채로운 역할을 맡았지만 영화팬들의 기억 속 그녀는 능청맞고 당돌한 소녀 마틸다였다. 그런데 ‘블랙스완’으로 돌아 온 그녀, “이제 소녀는 그만!” 이라고 외치고 있다.

 

                        ▲ 블랙스완 포스터. ⓒ 블랙스완 홈페이지


‘완벽한 예술’을 향한 집착과 광기

방안을 인형으로 가득 채우고 핑크색을 즐겨 입는 소녀적 감성의 니나는 뉴욕 시립 발레단 소속의 발레리나다. 그녀는 완벽을 꿈꾸며 노력하는 연습벌레다. 드디어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프리마돈나로 낙점된 그녀. 선(善)을 대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왕자를 유혹하는 사악한 쌍둥이 자매 오딜을 동시에 연기해야 한다. 그러나 프리마돈나가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 선한 인상과 뛰어난 기교로 백조 역할엔 손색이 없지만 흑조 역을 감당하기엔 관능미와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용단장은 호통친다.

“너 자신을 버려!”
“욕망을 분출해 봐. 우리를 유혹하라고! 더 강하게!”

지금까지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는 작품의 압박 속에서 니나는 광적인 집착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연습을 거듭하면서 흑조로서의 표현이 점점 더 완벽해질수록 그녀는 ‘소녀’의 정체성을 잃고 혼돈에 빠진다. 매일 마주치는 거울 속에서,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본능에 충실한 또 다른 페르소나와 마주치며 광기를 드러낸다. ‘완벽한 예술’을 위해 저 깊은 곳에 감춰 두었던 ‘어두운 자아’를 꺼내면서 분열하는 것이다.

 

                       
▲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순결한 백조와 사악한 흑조의 모습. ⓒ 블랙스완 홈페이지


‘블랙스완’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한 레슬러의 삶을 성형으로 망가진 왕년의 꽃미남 배우 미키 루크가 되살려 화제를 모은 ‘더 레슬러’의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만들었다. 뉴욕 발레계를 깊이 들여다 본 이 작품은 완벽한 공연을 향한 발레리나들의 열정과 성공에 대한 갈망, 여인으로서의 욕망 등을 적나라하게 잡아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백조의 호수’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작품 줄거리를 아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결말도 살짝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역 발레리노와 사랑에 빠져 약혼

나탈리 포트만은 순수의 상징인 백조와 욕망의 화신인 흑조를 오가는 니나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1년 전부터 하루 5~8시간의 발레 연습을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인데 9kg이 빠질 정도였으니 연습의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그래선지 영화 속 그녀의 발레 연기는 프리마돈나의 몸짓으로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보인다. 다리 부분이 클로즈업 되는 전문적 연기는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솔리스트 새라 레인이 대신했다. 비평가들은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과 섬뜩한 광기를 동시에 보여준 그녀의 연기에 ‘포트만의 재발견’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탈리 포트만. ⓒ CGV화면캡처


이 영화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달 28일 열린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녀는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1994년 ‘레옹’의 마틸다 역으로 데뷔한 이래 스트립댄서를 연기한 ‘클로저’로 2005년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수상 무대에 올랐는데, ‘블랙스완’ 때문에 만난 뉴욕 시립 발레단의 안무가 벤자민 마일피드가 아기의 아버지다. 마일필드는 영화에서 니나의 상대역인 왕자로 출연했고, 그녀에게 발레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영화 속 발레단장은 관능미가 부족한 니나를 호통치면서 상대 무용수에게 “너라면 저런 통나무와 사랑을 하고 싶겠니?” 하고 묻는데, 그가 포트만의 약혼자인 걸 알고 보는 관객이라면 빙그레 웃음이 나올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른바 ‘엄친딸’이다. 아역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됐지만 하버드대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2004년부터 국제공동체지원재단(Hope for FINCA)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빈곤 여성들을 위한 소액대출지원을 위해 에콰도르·과테말라·에티오피아 등을 돌며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고 있다. 그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모님과 ‘영화에서 안무를 맡아 준 그분’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활짝 피어난 포트만이 이제 모성과 가족의 세계로 행복한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