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의 우회도로]‘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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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의 우회도로]‘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

여름 극장가에 선보이는 <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다.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간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이야기를 그렸다. 생각지도 못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택시운전사는 시민으로서의 상식, 택시기사로서의 소임을 다해 독일 기자와 광주 시민을 돕는다.

 

배우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주)쇼박스 제공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여만명 연합군의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다. 나치 독일군의 포성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연합군은 민간 선박까지 동원해 필사의 퇴각 작전을 벌인다.

 

<택시운전사> 속 군인들은 광주의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갖은 방법을 쓴다. 광주에 들고 나는 모든 차량을 검문하고, 언론을 철저히 단속한다. 기백 있는 지역 기자들이 윤전기를 돌려보려 하지만, 타협적인 동료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군인들은 광주로 잠입한 외신기자와 그를 안내하는 서울 택시기사의 존재를 금세 알아챈다. 특히 ‘사복조장’(최귀화)이란 배역명으로 등장하는 한 군인은 이 모든 악행의 중심 인물이다. 군인이 아닌 척 사복 차림으로 광주 거리를 활보하는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독일 기자와 택시기사 앞에 나타나 그들을 체포하려든다. 그는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지치지 않고 독일 기자와 택시운전사의 뒤를 쫓는다.

 

반면 <덩케르크>에는 사복조장 같은 배역이 없다. 명색이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쟁영화지만, <덩케르크>에는 독일군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독일군은 오직 멀리서 다가오는 총알, 포탄, 어뢰, 공중전을 치르는 전투기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즉 <덩케르크>는 적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전쟁영화다.

 

<덩케르크>의 시도는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로서는 상당히 대담하고 실험적이다. ‘악의 얼굴’을 지목하고, 그에게 손가락질하려는 것은 많은 관객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도사린 악은 많은 경우 가시화되지 않지만, 영화는 언제나 추상적 악을 특정한 캐릭터로 형상화한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거나 인육을 탐하는 좀비거나 그도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악덕 펀드매니저거나, 영화에는 배우가 연기하는 악당이 나와야 한다. <택시운전사> 속의 악당인 사복조장은 단선적이고 기능적이라 캐릭터로는 매력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관객의 이해를 돕고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장치가 된다.

 

영화 <덩케르크>.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끔찍한 범죄 용의자가 체포돼 경찰서의 취재진 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용의자는 챙이 있는 모자를 눌러쓰거나, 얇은 점퍼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리곤 한다.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 놈 얼굴 좀 보자”며 화를 낸다.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피해가 심할수록, 범인의 얼굴을 보려는 욕망도 커진다. 피의자나 그 가족의 인권 침해를 우려해 얼굴 공개에 소극적이던 수사기관도 최근에는 국민의 알권리, 범죄 예방 등의 이유를 들어 방침을 바꾸는 추세다.

 

뉴스 시청자들은 세상에 만연한 악의 기운이 응축된 얼굴을 보면서 그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가 사형이나 그에 못지않은 중형을 받기를 기대한다. 마치 흉악범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악도 사라지리라고 여기듯이 말이다.

 

세상은 그리 돌아가지 않는다. 악당을 잡아넣으면 또 다른 악당이 나타난다. <택시운전사>에서 누군가 사복조장을 때려눕히거나 일말의 양심에 호소해 개심시켰다고 해도 광주의 비극은 여전할 것이다. ‘사복조장’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악은 개인에 의해 실행되지만, 실행을 강요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전무후무한 악당인 아돌프 히틀러조차 초자연적 권세가 아니라 민주적 선거제도에 의해 선출됐다. 히틀러의 악행 뒤에는 그에게 표를 던진 독일 국민, 권력자의 악의를 실천에 옮길 강력한 국가기구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유권자의 선택에 의해 당선됐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청와대를 압박한 뒤에야 권력의 폭주를 멈출 수 있었다. 지난 정권의 실패는 개인의 잘못을 넘어, 국가의 시스템이 특정인의 전횡을 사전에 막거나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튼튼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악의 얼굴’을 단죄하는 것은 통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악당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악당이 나타나더라도 마음대로 악을 행할 수 없도록 제어장치를 갖춘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물론 그건 악당을 지목하고 단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흥행을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여름 극장가의 쉬운 흥행 공식을 넘어서는, <덩케르크>처럼 도전적인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