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이면 한참이나 몸을 뒤척거리게 된다. 가까스로 수면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를 자극하는 미묘하고도 불균질한 감촉이 나를 다시 맨정신의 세계에 내팽개친다. 베개, 바로 베개가 범인이다. 최적의 쿠션감과 높이를 찾아 마치 1㎜ 단위로 유물이 묻혀있는 땅을 훑어가듯 머리를 조금씩 움직인 후에야 비로소 잠이 들 수 있다. 혹은 피곤함이 정점에 올라야 베개의 방해를 무릅쓰고 수면의 구덩이에 몸을 담글 수 있다. 평소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어서 타박받는 게 일상인데, 유독 잠들 무렵이 되면 온몸이 예민해진다. 연애 시절, 연인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 누웠다가도 잠들기 전이면 반드시 팔을 그의 머리에서 빼내야만 했다. 아무리 사랑이 충만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잠버릇이 험악한 아내는 종종 다리를 내 몸에 올려 놓고 잠드는데, 내가 곯아떨어졌다 하더라도 슬며시 자기 다리를 밀어낸다는 증언을 하곤 한다. 사지가 그럴진대, 감각을 느끼는 뇌에서 가까운 목과 머리는 어떻겠는가. 베개에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꽤 오랫동안 썼던 할머니 내복색 베개가 제일이었다. 푹 꺼지는 솜베개도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딱딱한 베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라텍스도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그 베개는 머리에 딱 맞았다. 그 베개의 소중함을 그때는 몰랐다. 이사를 하면서 촌스러운 할머니 내복색 베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초록색 체크 무늬 베개가 왔다. 베개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쿠션에 가까웠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었다. 솜은 솜인데 지나치게 많았다. 수면의 적이었다. 음악을 틀고 침대에 누우면 새벽까지 계속 음악을 듣게 된 건 단지 그때의 내가 음악에 미쳐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래도 신기한 건 군대 시절. 베개 탓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수많은 모텔과 호텔, 여인숙 등에서, 아니 남의 집에서도 종종 자봤지만 베개 때문에 못 잔 기억도 없다. 언제나 나의 공간에서 베개가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살기 시작한 이래 1년에 한 번, 짧으면 반년에 한 번은 베개를 바꿨다. 할머니 내복색 베개만큼의 완벽한 베개를 찾아 아직 솜도, 쿠션도 꺼지지 않은 베개를 버렸다. 그래도 100%의 베개는 찾을 수 없었다. 눕자마자 스르르 나를 숙면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치 할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안온한 베개는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결벽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맞는 베개를 찾아 헤맬 뿐, 베개 때문에 정신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니 ‘베개에 유독 취향을 따진다’고 말하고 싶다.
가끔 생각한다. 한국어 중 가장 남용이 심한 단어는 취향이 아닐까 하고. 아직 취향에 꼭 들어맞는 베개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음악은 어느 정도 취향을 확립했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에 입문한 후 ‘내 스타일의 음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맘에 들지 않는 음악, 거슬리는 음악이라도 계속 듣다보면 숨어있는 맛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할수록, 듣자마자 ‘내 취향 아닌데?’라며 끄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경계하게 됐다. 진보적이고, 새롭고, 낯선 음악들이 보통 그런 취급을 받는다. 편하고 말랑말랑한 음악에만 익숙해지면 청각의 근육은 느슨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사실을 지적하면 “내 취향 아닌데?”라는 말이 돌아온다. 취향은 충분한 경험과 단련을 통해 확립되는 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어도 괜히 꼰대질이라고 할까봐 조용히 추천을 거둔다. 거리를 걸으면, 가게에 들어가면 대부분 비슷한 음악이 흐른다.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은 점점 공공장소에서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들 취향을 얘기한다. 베고 누우면 그만인 베개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이 종종 든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그럴싸한 베개를 발견했다. 지르기도 전에, 그 베개가 궁금해진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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