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신화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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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문화와 삶]신화와 과학

오래된 CD 한 장을 꺼내 오디오에 올려 놓았다. 아마 21세기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틀었을 거다. 1970년대 이탈리아 밴드 메타모르포시(Metamorfosi)의 2번째 앨범인 <인페르노(Inferno)>였다.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이 앨범은 근 20년 만에 들어도 생생했다.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웅혼하고 장중한 키보드 라인까지 흥얼거릴 수 있었다.


메타모르포시를 비롯한 1970년대 이탈리아 음악이 국내에서 흥한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의 이야기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했던 KBS 2FM의 심야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통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아트 록 앨범들이 소개됐던 것이다. 라이선스는커녕 수입도 되지 않던 음반을 구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설령 구할 수 있다 해도 몇 만원은 우습게 뛰어넘는 ‘원판’을 살 수 있는 돈이 고등학생에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니 오직 밤잠을 참아가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라테 에 밀레(Latte E Miele), 뉴 트롤즈(New Trolls), 일 로베키오 델라 메달랴(Il Rovecchaio De La Medalia), 퀘벤다 베키아 로칸다(Quevenda Vecchia Locanda) 등 외우기가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수준인 이탈리아 밴드들의 이름을 그때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둘씩 생겨난 유럽 아트 록 팬들을 위해 ‘아트 록 매거진’이 창간되고, 급기야 이 앨범들이 라이선스로 발매되기 시작한 게 1992년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는 음반뿐만 아니라 밴드 및 음악에 대한 정보조차 획득하기가 어려웠다. 방송에 나오는 지극히 단편적인 소개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든 게 상상의 영역이었다. 마치 퍼즐의 빈 조각을 맞추듯, 쪼가리 정보들을 엮었다. 모자란 퍼즐은 확인할 길 없는 루머로 채웠다. 그게 ‘팩트’건 ‘구라’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싸한 무협지 같은 이야기가 애호가들의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상상은 정보에 그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메타모르포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비극적 상황이 일어났다. 여느 이탈리아 밴드들과는 다른, 마치 파바로티를 연상케 하는 성악적 보컬과 연옥 순례자의 심경을 그리는 듯한 키보드 연주에 심취 중이었는데 하필 이 곡이 방송 끝곡이었던 것이다. 마치 계곡에서 비급을 획득한 우리의 주인공이 속세로 돌아와 숙적과 대면하는 순간! 바로 뒤 결투의 장이 파본으로 발행된 무협지를 읽는 심경이었달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음반을 구할 길은 없었다.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신청곡 경쟁률도 치열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상상하고 또 상상하는 것. 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확인할 길 없는 뒷부분을, 가까스로 녹음한 앞부분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후일 대학에 들어가 가입했던 음악 동호회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을 안주 삼아 술깨나 마셨다.)


과학이 신을 몰아내고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 이전, 모든 신화와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고대 에게해 문명의 누군가가 번개를 보고 제우스를, 불의 근원을 생각하다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상상으로 창조해낸 이런 이야기들은 한 문화권에서 얽히고설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신화가 됐다. 과학의 시대에 태어나 그리스 신화를 무협지처럼 읽었던 지난 세기의 끝무렵에도, 여전히 신화를 만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신화의 세계에서 1970년대 유럽이란 공간은 일종의 유토피아이자 엘도라도였다.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 함께 인터넷은 신화를 구성한 허구의 퍼즐 조각들을 치워버리고 정사라는 이름의 진실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상상도 할 필요가 없다. 듣고 싶은 음악은 유튜브에, 풀고 싶은 궁금증은 구글에 모두 있다. 팬들끼리의 논쟁에 필요한 무기는 그럴싸한 상상에서 엄정한 근거가 된 지 오래다. 정보혁명은 우리에게 지적, 경제적 편리를 선사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라. 얼마나 편리해졌나. 하지만 세상에는 역시 공짜가 없다. 우리는 편리를 택한 대신 상상력의 많은 부분을 대가로 치렀다. 처음부터 이 선택의 결과에서 살아온 세대는, 후일 자신들이 경험한 세상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인공지능이 생활을 지배하게 될 그 무렵 즈음에.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