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그의 노래에는 상징과 은유, 아름다움과 냉철함이 공존한다. 일찍이 정태춘은 시인의 예감으로 그것들을 건져 올려 노래로 펼쳐 보였다.
그의 시작은 서정시인이었다. 1978년 ‘시인의 마을’이나 ‘촛불’이 그러했다. 그러나 1980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흰 고무신에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는 투사로 변신했다. ‘북한강에서’는 1986년 아내인 가수 박은옥과 발표한 앨범의 수록곡이다. 정태춘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비군 동원훈련장으로 가는 트럭 위에서 이 곡을 썼다. “당시 송파구 가락아파트에 살았죠. 새벽 댓바람부터 인근 여고 운동장에 모여서 트럭을 타고 북한강가에 있던 예비군훈련장으로 갔어요. 그 넓은 강을 보면서 가사와 악상이 떠올랐죠.”
민중들의 도도한 흐름이 저 강물과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먹구름이 머리를 짓눌러도 찬물로 얼굴을 씻고 새로운 강물에 발을 담그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떠나가는 배’나 ‘서해에서’ 등 그의 노래는 늘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치열했던 우리네 삶을 얘기해왔다. 그가 문화운동가로서 주한미군 문제, 노동자들의 권익, 가요 사전 심의 문제 등과 싸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초지일관하는 예술적 의지 덕분이다. 지난 촛불집회 때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정태춘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면서 이렇게 외쳤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시집도 내고, 사진전도 열고, 가죽공예도 하는 정태춘이지만 본령은 노래다. 내년이면 노래 인생 40년, 그의 새로운 목소리가 기다려진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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