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아니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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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산울림 ‘아니 벌써’

“대학 1학년 때 고물상에서 기타 교본과 1500원짜리 세고비아 통기타 2대를 사서 교본의 첫 장에 나오는 D코드를 잡으며 30분 동안 쳤어요. 그 소리가 참 아름다워 음악을 하게 됐죠.”(김창완)

 

김창완, 창훈, 창익으로 결성된 3형제 그룹 산울림의 시작은 차고에서 창업한 스티브 잡스와 다를 바 없었다. 왕십리 시장에서 구해온 계란판으로 방음을 하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 그들이 대마초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은 가요계를 바꿀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 가벼운 아침 발걸음/ 모두 함께 콧노래 부르며/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이리 저리 지나치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

 

 

감수성과 실험성이 듬뿍 배인 사운드와 동요 같은 노랫말,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재킷까지 참신함이 넘쳤다. 시작은 1977년 MBC 대학가요제에 서울대 농대 그룹 샌드 페블스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였다. 둘째 창훈이 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음반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엔 기념앨범 한 장을 갖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큰형이자 리더 김창완의 은행 입사 시험 날짜와 레코딩 날짜가 겹쳤다. 은행 시험을 포기하고 녹음을 했다. 김창훈의 베이스는 국산 싸구려 기타, 김창완은 필리핀 밴드가 버린 중고 기타여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음악평론가 이백천에게 악기를 빌려 재녹음을 했다. 총 9곡을 담은 데뷔 앨범이 발표되자 대중의 ‘괴상한 음악이 나왔다’는 반응 속에 단 20일 만에 신드롬에 가까운 돌풍으로 이어졌다. 1978년 문화체육관 첫 단독 콘서트. 공연장에서부터 덕수궁 앞까지 관객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관객들이 던진 꽃으로 무대는 꽃밭이 되었다.

 

사랑이나 이별 얘기도 없는 노래로 주류 음악 시장을 단숨에 평정한 것은 전무한 일이었다. 전통적인 화법에 머물던 가요계의 지형도를 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산울림 형제들은 생활고 때문에 그룹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광수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