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에서 강산에는 이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눈물을 쏟았다. 관객들도 같이 울었다. 강산에의 어머니는 충청도에서 함경도로 시집갔다가 한국전쟁 때 남편과 생이별, 아이만 둘러업고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왔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아버지도 전쟁통에 처자식과 헤어져 거제도까지 흘러왔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 결혼하여 강산에와 그의 누나를 낳았다. 그러나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강산에가 3살 때 작고했다. 강산에는 1984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도 못돼서 중퇴했다. 자유롭고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강산에는 꽉 짜인 대학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이 한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어머니도 희망을 포기했다.
강산에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음악실 DJ도 하고, 음악카페에서 노래도 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로커를 꿈꾸던 그가 달달한 노래를 해야 하는 음악카페에서 환영받기는 어려웠다. 한때 노래를 포기하고 연극을 하기 위해 극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가수의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198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인근의 소도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공부를 했다. ‘라구요’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외롭게 살았던 어머니에게 선물하기 위해 일본의 자취방에서 만든 노래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삶은 그 자체가 절절한 한국 현대사였다. ‘라구요’를 타이틀곡으로 1991년 데뷔앨범을 냈지만 ‘18번이기 때문에’라는 노랫말이 방송사 등의 심의에서 문제가 됐다. 너무 속된 표현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강산에는 꾸준히 라이브무대를 통해 그의 노래를 알렸고, 팬들이 먼저 알아보고 그를 오랜 무명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줬다. 부모님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던 북녘땅의 무대에 선 강산에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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