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남북화해 모드에 다들 들떠있는데 미술동네는 어느 미술관의 우울하고 서글픈 ‘권고 사직 형식을 빌린 10여명의 사실상 해고’(경향신문 4월25일자 23면 ‘돈보다 예술이라더니…아라리오의 두 얼굴’) 소식에 같이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유난히 해고와 이직이 잦고 채용기간도 짧은 미술동네 일자리는 문화예술이라는 입에 발린 명분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과 달리 대표적인 고학력·저임금·비정규직의 총합이다.
미술동네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전반의 일자리가 팍팍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천박함 때문이다. 먹고살 만해졌다고 문화와 예술을 들먹이고, 패트런(후원자)이라 으스대고, 컬렉터라 거들먹거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신의 지위나 권세의 형성 과정이 부적절해 불안한 이들이 잘못과 허물을 감추려고 문화예술을 내세우는 허장성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술동네 일자리가 척박한 원인을 더하면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비영리 공공성이 우선이라 최소한 기본적으로 운영한다 해도 ‘돈 먹는 하마’를 면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갤러리는 상업공간이다. 미술관과 화랑은 유사해보여도 한 곳은 돈을 쓰고, 또 다른 한 곳은 돈을 버는 곳이라는 점에서 궁극의 차이가 있다.
기업이 미술관을 설립 운영하는 경우 회사와 미술관의 설립자는 같아도 보수 체계는 천양지차다. 그럼에도 왜 많은 청춘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것일까? ‘있어 보이는 일자리’라는 면과 ‘자기 만족도가 높은 직종’이라는 점 때문이다. 저서 등 연구 성과 없이도 취직만 하면 ‘큐레이터’가 되고, 작은 전시 하나만 맡아도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을 붙여 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곧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빠져나간다. 이 동네는 경륜 있는 전문 인력보다는 열정 어린 청년 인력만 가득하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인적 자원의 소모 공간이 되고 만다.
국공립 미술관도 최저임금조차 안되는 임금에 비정규직이 횡행하는 형편에 사립미술관에 최소한의 고용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고 알려진 미술관에서조차 사실상 대량 해고가 벌어지는데, 그 원인과 문제는 내부에도 있겠지만 외부에도 있다. 대량 해고를 마냥 비난만 할 수 없는 것도 이런 형편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91년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1000개의 박물관시대’를 표방했다. 27년이 흐르면서 양적인 목표는 달성한 듯하다. 2017년 말 기준 국공립, 사립, 대학의 미술관·박물관은 1082개에 이른다. 사립은 518개(박물관 361개, 미술관 157개)로 1000개 중 절반이 넘는다.
사립의 경우 정부로부터 토지형질변경 허가 등과 세금이나 상속세·전기료·법인세·지방세 감면 또는 유예와 양도소득세 분할납부, 해외 학술용품 구입 시 관세 감면, 입장료 부가세 면제 같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기본 운영비를 따져보면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런 혜택을 노린 영악한 미술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개가 열정 때문에 이어간다. 사립 기관들이 폐관하면 그간 유예한 세금을 모두 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운영하면 할수록 사립 기관들은 국가 소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정 기간을 넘기면 가진 자산보다 유예된 세금이 많아 빚잔치를 해야 할 판이다.
사립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적어도 사립학교에 준하는 지원이 절실하다. 미술관·박물관은 분명 ‘교육기관’이다. ‘학교 밖 학교’로서 창의성을 견인하는 4차 산업시대의 한 근간으로, 고령화 시대 실버세대들의 재교육 기관으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립 기관들도 환골탈태해야 한다. 미술관·박물관 설립자들이 대접받는 이유는 사유재산을 공공재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법인화를 통해 법적으로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할 필요가 있다. 폐관하면 유예된 세금 때문에 국가의 것이 될 터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희생이 희생을 낳듯 열정페이가 또 다른 열정페이를 낳는 일을 이제 멈춰야 한다. 나는 미술동네 일자리 문제가 문화적폐라고 본다. 더 이상 민간 열정에만 기대어 박물관·미술관을 끌고 갈 수는 없다. 교육기관이라는 원칙에서 다시 진흥을 고민해야 한다.
<정준모 |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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