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대표 ‘엄친아’, 서울대 출신 배우, 데뷔 7년 차 배우 이상윤의 이름 앞에는 아직도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단막극부터 특별기획드라마, 정통 사극, 일일드라마, 미니시리즈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저 반듯한 외모의 ‘훈남’ 이미지로 기억한다. 배우로서 외연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중하며 노력해온 그로서는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할 터.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얼마 전 종영한 KBS-2TV ‘내 딸 서영이’는 아마도 그 과정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
극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느낀 보람
배우 이상윤(32)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또 한 번 ‘인기 드라마’라는 다섯 글자를 새겨 넣었다. 데뷔한 지 이제 7년이 된 젊은 배우이지만 또래 배우들에 비해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에 자주 출연했기 때문이다. 2007년 출연했던 KBS-1TV 일일드라마 ‘미우나 고우나’는 시청률 40%를 넘었다.
2010년 출연한 SBS-TV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또한 만만치 않았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인 데다 당시로서는 주말극에서 파격적인 설정으로 회자됐던 동성애 코드 등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화제가 되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 이상윤에게 큰 행운이자 기회였다.
하지만 이상윤은 얼마 전 막을 내린 KBS-2TV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통해 이전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보람을 얻었다. 이는 극을 끌고 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일 터. 그는 극중 이서영(이보영 분)의 남편 강우재 역을 맡아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제는 하나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드라마의 성공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6개월간의 긴 촬영을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이상윤을 직접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유순해 보이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안은 배우로서의 승부욕과 의지로 다져져 있었다.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와 이상윤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상윤에게 강우재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극중 강우재는 부유한 집에서 자라 부족함이 없지만 원하는 건 꼭 갖겠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었다. 모든 게 여유로운 그에게 없는 단 한 가지가 서영에게는 있었다. 바로 ‘간절함’이었다. 강우재는 서영에게서 자신과 다른 면을 발견하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보통 드라마와는 달리 10회 만에 남녀 주인공이 결혼을 했죠. 이렇게 빠른 전개는 다른 주말드라마에서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 그런 부분이 신선했어요. 일단 남녀 주인공을 결혼시켜놓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개에서 흥미를 느꼈죠.”
하지만 3년이 지난 후 그들의 사랑은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갔다. 서영이가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를 부정하고 결혼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재는 진실을 원하지만 서영은 계속 마음을 닫았다. 결국 그들은 결별을 해야 했다.
“우재는 서영이에게 끝없이 사랑을 주는 캐릭터죠. 하지만 서영이는 극 초반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계속 사랑을 밀어내기만 해요. 서영이의 비밀을 알았을 때도 우재는 속았다는 배신감을 덮고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만 결국 서영이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저도 사람이라 극중 상황의 영향을 받잖아요. 계속 우재를 밀어내기만 하는 서영이를 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이유 없는 사랑처럼 보이기도 했죠.”
가족으로부터 실감하는 드라마의 인기
“극을 통해 오랜만에 효도를 했다”라는 이보영처럼 이상윤도 집에서부터 ‘내 딸 서영이’의 인기를 실감했다. 극 중반 우재가 서영이의 비밀을 알고 진실을 우악스럽게 요구하는 장면을 두고 부모님이 식사시간에 넌지시 “너무 몰아세우진 마라”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또 마지막 회 방송을 앞두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에게 은근슬쩍 삼재의 생존 여부를 물어오곤 하셨다고. 그는 부모님의 질문에도 “모르고 보시는 게 재밌다”라며 능글맞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상윤도 고집이라고 하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인데, 극중 강우재는 실제 그보다 훨씬 심지가 곧고 고집이 센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서영이를 이해하고 결국 재결합하면서 드라마 안에서 점차 성장해갔다. 이상윤 역시 강우재를 연기하면서 마냥 상대에게 감정을 강요하고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특히 이서영 역의 이보영과의 연기 호흡은 큰 깨달음을 줬다.
“당연히 극중 서영이 캐릭터가 우재에게는 무척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보영 누나는 실제로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사실 6개월 동안 촬영하면서 서영이가 괴롭지 않은 주가 없었는데 긍정의 힘으로 다 이겨내더군요. 여자 입장에서 ‘남자 배우가 이렇게 연기하면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라며 코치도 많이 해줬어요.”
그는 “아직도 토요일 오후 8시에 TV를 켜면 ‘내 딸 서영이’가 나올 것 같다”라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현재 예정돼 있는 인터뷰와 화보 촬영 등을 끝내고 나면 어서 우재를 떨쳐내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날 생각이란다.
“해외도 좋지만 국내 여행도 하고 싶어요. 그동안 학교 때문에 여행을 가고 싶어도 실천을 못했어요. 휴가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13년째 대학생, 올해 졸업이 최대 목표
이상윤의 공식 데뷔작은 2007년 MBC-TV 드라마 ‘에어시티’다. 하지만 그 전부터 조금씩 단막극을 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는 데뷔부터가 남들과는 좀 다르다. 200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데뷔 때부터 서울대생이라는 학력이 화제가 됐다. 자연스럽게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남자 김태희’ 등의 닉네임이 따라다녔다. 최근 실제로 입학 당시 수학능력시험 점수가 40백 점 만점에 3백70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의 엄격한 학사 관리는 이상윤의 활동에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었다. 급기야 출석일수가 모자라 학사경고를 네 차례나 받았고 결국 제적 처리를 당해 7년 동안 학교를 떠나 있었다. 올해 2월 졸업을 목표로 드라마 촬영 중간에도 틈틈이 학교를 다녔지만 5학점이 부족해 또다시 졸업하지 못하는 비운의 학생이 됐다.
“휴학도 여러 번 했고 일과 병행하다 보니 학교 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꼭 졸업해야죠. 아마 학부생들도 2000년에 학교에 들어온 저를 보기가 힘들 거예요(웃음).”
그의 연기생활은 대학 시절 출중한 외모를 눈여겨본 CF 감독의 권유로 시작됐다. 이후 ‘에어시티’, ‘미우나 고우나’, ‘사랑해, 울지 마’, ‘맨땅에 헤딩’, ‘즐거운 나의 집’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점차 재미를 붙인 연예계 생활은 비록 학사 관리에 애를 먹였어도 끝도 없는 희열의 순간들이었다.
언뜻 봤을 때 무척 유순하게만 보이지만 야구, 농구 등 못하는 구기 종목이 없는 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린다. 촬영을 할 때도 일부러 시간을 쪼개 운동을 하러 간다. 이번 ‘내 딸 서영이’를 찍는 동안에는 촬영 스케줄이 전반적으로 빡빡해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드라마가 끝난 지금부터 서서히 운동을 재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승부욕은 반드시 따라온다. 한때 승부욕을 발동하다 그만 사고를 낸 적도 있다. 모델 활동을 할 당시 농구를 하다 상대방의 손에 얼굴을 다쳐서 여섯 바늘이나 꿰맸을 정도. 야구나 농구는 하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야구 시즌 중에는 경기를 보느라 더 바쁠 때가 많다.
“LG트윈스의 팬이에요. 올해는 꼭 LG트윈스가 가을 야구를 했으면 좋겠네요. 농구팀은 전주 KCC를 좋아했는데 올해 성적이 좋지 않아 안타까워요.”
승부욕 때문인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도 언제나 관심이 많다는 이상윤의 이런 승부욕은 연기에서도 발휘된다. 13년 동안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연기에 매달렸던 것은 정직하게 노력을 반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승부욕과도 연결되는 것. 휴학 일자가 아무리 길어도 그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먼저 배우로서 스스로를 완성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역할에 출연해왔는데도 지나치게 반듯한 이미지라서 조만간 비뚤어진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만일 제가 ‘올백’ 머리를 하고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보시는 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실까요?”
극중 두 번의 결혼을 겪으며 달라진 결혼관
최근까지 이어왔던 연애로도 화제를 모았던 그.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던 배우 남상미와 케이블 채널 tvN의 ‘택시’에 출연해 열애 사실을 알리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각자의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이별을 맞게 됐다.
그도 이제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결혼관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마음 아플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남상미와의 결별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조금은 달라진 결혼관을 털어놨다.
“결혼에 대해 지금은 많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지금까지 일을 하느라 쭉 바빴고요. 그리고 개인적인 일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도 결혼도 신중해졌어요. 이번 드라마에서 마지막 회에 우재와 서영이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장면이 등장해요. 거기서 딸이 등장하는데 천호진 선배님이 그 아이를 안는 장면을 보니까 ‘아, 나도 결혼하고 싶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됐어요.”
아무리 바빠도 그는 아직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자주 식사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2월에 있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매년 꼬박꼬박 챙길 정도로 효자다.
폭넓은 연기를 소화해내는 배우를 꿈꾼다
‘내 딸 서영이’로 다시 한번 시청률 보증수표로 입지를 굳힌 그에게 2013년 소원을 물었다. 그는 총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졸업이에요. 이번에는 꼭 졸업장을 따고 싶고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좋은 작품을 만나는 거죠. 어떤 역을 맡든지 비중은 크게 상관없지만 작품이 가진 이야기 자체에 힘이 있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가 밝힌 마지막 소원은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 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했으나 생각해보면, 이는 배우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한 작품을 하고 나서 다음 작품으로 이미지 변신을 할 때 염색이나 과감한 커트 등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보다 좋은 변신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 역시 그러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왔던 유지태 선배님의 헤어스타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샛노란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도 그런 외모적인 변신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에 걸맞은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욱 폭넓은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거든요.”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전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영광에 짓눌리지 않고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안방에 선사했다. 물론 그 안에는 이상윤의 노력도 있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국민 남편’ 유준상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도 나름 현실적이면서도 멋있는 남편상을 펼쳐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이상윤에게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사자성어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부드러운 미소 뒤에 열정을 감춰두고 다음 작품으로 그리고 또 다음 작품으로 착실히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이상윤이라는 배우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이유를 이번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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