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의 등장 (2) - 뉴욕 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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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의 등장 (2) - 뉴욕 언더그라운드


텔레비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근간으로 하는 뉴욕 펑크 씬을 대표하는 밴드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이미 있기는 했지만, 좀 더 오늘날 얘기하는 펑크에 가까웠던 뉴욕의 밴드를 얘기한다면, 뉴욕 돌스(New York Dolls)를 얘기해야 할 것이다.

1972년부터 뉴욕의 머서 아트 센터(Mercer Arts Center)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뉴욕 돌스는 화려하고 양성적인 외관 덕에, 글램 록의 서자 격으로 불리던 밴드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예쁘장하다기보다는, 너저분한 드레스와 화장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하던 밴드였고, 야생적인 사운드를 롤링 스톤스를 연상케 하는 리프와 연결시킨 음악에, 흡사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연상케 하는 테마를 들려주던 밴드였다.


(왼쪽 사진을 보라. 어디 꽃미남이었던 데이빗 보위 같은 글램 록 스타에 비교하겠나)

사실 뉴욕 돌스는 오랜 활동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이들의 기묘한 인형극은 뉴욕의 범위를 벗어나지도 못했지만, 훗날, 섹스 피스톨스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밴드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섹스 피스톨스를 키워 냈던 말콤 맥러렌(Malcolm MacLaren)이 그 기본기를 과연 어디서 배워 왔단 말인가? 뉴욕 돌스의 2집이었던 “In Too Much Too Soon” 당시의 매니저가 말콤이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돌스 출신의 제리 놀란(Jerry Nolan)과 쟈니 썬더스(Johnny Thunders)라는 이름을, 잠시 기억해 두자.



New York Dolls - Stranded In The Jungle


본격적인 뉴욕 펑크의 시작은 클럽 CBGB's의 개장으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 많은 뉴욕 펑크 밴드들이 그 시작과 끝을 맞이했던 이 클럽은 1974년, 힐리 크리스탈(Hilly Kristal)이 문을 연 이래, 현재까지도 소닉 유스(Sonic Youth) 등의 밴드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뉴욕 펑크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그 명성을 있게 한 밴드는 여럿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첫선에 꼽힐 밴드들 중에 하나로는 텔레비전(Television)이 있다. 데뷔 앨범이 나온 것은 1977년이었지만, 이미 1974년부터 CBGB's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었던 텔레비전은 탐 벌레인(Tom Verlarine - 시인 베를렌을 흠모하여 이렇게 이름을 지었던)과 리처드 헬(Richard Hell)이라는 펑크의 거물들이 있었던 밴드였고, 패티 스미스(Patti Smith)와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함께 뉴욕 펑크를 대표하는 밴드로 꼽힌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MC5풍의 트윈 기타를 가지고 있었던 텔레비전은 벌레인과 헬의 미묘한 긴장 속에 당대의 어느 밴드보다도 냉랭하면서도 퇴폐적인 펑크 사운드를 들려준 밴드였고, 데뷔작인 “Marquee Moon” 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같이, 이후의 수많은 모던 록 밴드들이 그 영향을 술회하는 작품이 된다.



Television - See No Evil


냉랭하면서도 고지식했던 벌레인과 달리 거칠고 기괴했던 리처드 헬은(펑크 시인이라고 불리는 벌레인과 헬, 패티 스미스이지만, 확실히 헬은 나머지 둘과는 많이 틀렸다) 이후 쟈니 썬더스, 제리 놀란과 함께 하트브레이커스(Heartbreakers)를 결성해 소수지만 광적인 팬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런던에서 공연을 하면서 런던의 펑크 무브먼트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트브레이커스는 첫 앨범 “L.A.M.F”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리처드 헬은 이후 자신의 밴드인 보이도이스(Voidoids)와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펑크의 찬가 중 하나로 기억되는 ‘Black Generation’ 등의 곡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반 줄리안(Ivan Julian)이라는 보기 드문 흑인 펑크 기타리스트도 있었던 보이도이스는, 사실 저 “Black Generation” 앨범 발매 뒤 멤버 전원이 탈퇴하는 통에 역시 많은 활동을 보이진 못했지만, 짧은 활동 기간 동안 뉴욕 펑크를 상징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그 뾰족머리와 찢어진 옷 등의 이미지는 말콤 맥러렌에게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 것이기도 했다.



Richard Hell & the Voidoids - Blank Generation


패티 스미스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던 여성 로커이자(뭐 여성 로커가 어디서는 흔했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술비평가 겸 시인 출신의 ‘음유시인’ 이었던 스미스는 예술적인 전위성과 뉴욕 펑크 특유의 직선적인 태도를 동시에 보여주었던 뮤지션이었고,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탓인지 “Radio Ethiopia” 등의 앨범에서는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스미스는 MC5의 프레드 스미스와 혼인하기 전까지 “Easter”, “Wave”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1988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펑크의 ‘대모’ 라는 별칭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REM의 앨범에서의 모습일 것이다. 확실히 나이든 패티 스미스였지만, 그 에너지는 REM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Patti Smith - Rock N' Roll Nigger



이 지적이기 짝이 없는 뉴욕 펑크 밴드들에 반감을 가졌던 다른 밴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통과는 아무 상관없이 MC5 등의 밴드에 가까운 로큰롤을 추구했던 레이먼스(Ramones) 또한 1974년 뉴욕에서 결성된 밴드였다. 패티 스미스 등이 지적이었다면 레이먼스는 ‘쓰리 코드’ 를 이용한 도발적인 사운드로, 곡마다 2분 정도로 빨리빨리 끝내버리던 밴드였고, 리처드 헬의 본격적인 등장 전까지 로큰롤 본연의 매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펑크 밴드였다.

동네는 좀 틀리지만, 이런 레이먼스와 함께 강력한 로큰롤을 추구했던 이는 스티브 베이터스(Stiv Bators)와, 그의 밴드였던 데드 보이스(Dead Boys)가 있다. 이기 팝의 열성팬이었던 베이터스는 당시 꽤 잘 나가는 밴드였던 로켓 프롬 더 툼스(Rocket from the Tombs)의 쟈니 블리츠(Johnny Blitz), 치타 크롬(Cheetah Chrome)과 함께 데드 보이스를 결성하고(툼스의 나머지 멤버들이 결성한 것이 바로 페레 우부(Pere Ubu)이다) 77년 “Young Loud and Snotty” 로 활동을 시작한다. 1981년 데드 보이스의 해산 이후에도 베이터스는 이후 1990년 사망할 때까지 솔로작 및 로즈 오브 더 뉴 처치(The Lords of the New Church)로 활동하였고, 그 음침했던 사운드 덕에 영국의 댐드(the Damned)와도 비교되는 이들이기도 하다.



The Dead Boys - Sonic Redu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