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2018년 ‘신소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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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직설]2018년 ‘신소설’이 나타났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은 출간 이후부터 계속 화제다. 처음에는 그가 가진 독특한 이력과 단행본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의 글이 가진 힘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의 기획자로서 여러 서평을 챙겨 보고 있고 작가 역시 그렇다.

 

그런데 <회색인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김동식 작가는 얼마 전 나에게 “중간이 없네요” 하고 말했다. 그만큼 좋다는 사람과 싫다는 사람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느 편집자는 그를 두고 “인간계의 신인작가가 아니다”라며 “일상을 일시정지하고 방에 처박혀서 읽고 또 읽다가, 밖으로 뛰쳐나와 ‘호외’를 돌리며 이 책을 사라, 외치고픈 소설이 나왔다”고 했지만, 어느 독자는 “소문이 자자한 책이라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사실 종이가 아까울 정도”라고 했다. 이 두 서평은 온라인 블로그에 올라와 있어서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나는 김동식 작가에게 “작가님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극과 극으로 나뉠 거예요. 상처받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하고 답했다.

 

김동식 작가의 글은 그동안의 한국 소설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무척 낯설다. 현대소설을 오래 연구해온 나부터도 ‘이 글을 뭐라고 규정해야 하나’, 하고 혼란스럽다.

단편소설이라고 간편히 정의하면 그만이겠으나 글의 문체, 작법, 서사, 무엇 하나 이전의 소설과 닮은 데가 별로 없다. “김동식의 글은 김동식만 쓸 수 있는 거야” 하고, 어느 작가와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나도 그도 진심이었다. 김동식 작가는 글쓰기를 배운 일이 없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자신의 글을 고쳐나갔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는 어떠해야 한다’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빚진 것이 없는 자유로운 글을 쓴다. 다른 작가들은 김동식처럼 쓰지 않는 방법을 오랫동안 배워왔고, 독자들 역시 그러한 글쓰기/소설에 익숙해져왔다. 그래서 어느 독자에게는 “이 책을 사라, 외치고픈 (새로운) 소설”이 되고, 어느 독자에게는 “종이가 아까운 (이상한) 소설”이 된다.

 

김동식 작가는 지난달부터 ‘카카오 페이지’의 문학 카테고리에서 단편소설을 연재 중이다. ‘살인자의 정석 : 김동식 단편 연재소설[독점연재]’라는 제목이 붙었다. 담당 피디는 카카오 페이지에 연작이 아닌 단편소설이 연재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자신들에게도 실험적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인자의 정석’은 연재 한 달 만에 22만명이 넘게 본 소설이 되었고 문학 랭킹 1위에도 올랐다. 갑자기 카카오 페이지를 언급한 것은, 그 플랫폼에서 올린 ‘작품소개’가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김동식 작가의 글은 “2018년 신소설!”이다.

 

‘신소설’,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이다. 1907년에 광학서포는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신소설 혈의 누”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실제로 신소설은 그 이후의 소설을 통칭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110년이 조금 넘게 지난 2018년에 이르러, 다시 신소설이라고 부를 만한 글을 쓰는 작가가 나타났다. 광학서포가 그랬던 것처럼 카카오에서는 그의 글을 신소설이라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글이라고 광고한다. 흥미로운 점은, 김동식 작가의 소설이 110년 전 신문에 연재된 여러 단편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신문에 연재될 만큼의 짧은 분량이 그렇고, 대화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도, 불필요한 묘사와 설정을 최소화한다는 것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우화와 몽유 등의 장치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도 닮았다.

 

그래서 몇몇 근대소설 연구자들은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자신의 SNS에 ‘어, 이건 신소설인데…’ 하는 반응을 올리기도 했다.

 

110년 전에도 신소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가한 이들이나 쓰고 읽는 한가한 이야기’ 정도로 멸시했다. “종이가 아깝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그때도 많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소설은 문예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광수가 나타났고, 그를 닮은 젊은 문학청년들이 문학동인지를 창간했다. 문학공모전과 신춘문예가 생겨난 것도 191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초반에 이르는 이 시기다.

 

기존의 문학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김동식 작가의 이름은 21세기 한국문학 통사를 쓸 때 반드시 한 줄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마도, 110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다가온 ‘신소설’의 작가로 이름이 남을 것이다. 1년10개월 동안 380여편의 작품을 쏟아낸 그는, 지금도 여전히 3일에 1편 이상을 쓰는 성실한 작가다. 그의 작업이 어디까지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계속 글을 쓴다면 그는 한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작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의 글을 읽는 시대의 독자인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2018년에 이르러 신소설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나도 호외를 돌리고 싶다. “이 책을<회색인간>을) 사라.”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