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오지 말래도 온다. 그러나 늘 기다려지는 게 가을이다. 그런데 그 가을은 허망하리만치 짧다. 그래서인가. 가을은 아름답지만 외롭고, 슬프고, 허망하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이 1994년 데뷔앨범에 발표한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의 작품이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등 많은 작품으로 사랑받는 그는 파주를 기반으로 한 노래모임 ‘종이연’에서 윤도현을 만났다.
“그 당시 파주 광탄면에 작은 우체국이 있었어요. 그 우체국을 지나다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제목을 먼저 떠올렸죠. 그 우체국 앞에 은행나무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사가 계속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결국 세 번째 만에 완성한 곡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노랫말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노래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 윤도현이 부르기로 한 뒤에 바로 김광석의 전화가 왔다. 자신의 새 앨범에 이 노래를 넣고 싶다는 거였다. 김현성은 잠시 고민했다. 신인가수가 부르는 것보다 유명가수가 부르는 게 작품자에겐 더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모임의 막내 윤도현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김광석도 흔쾌하게 포기했다.
조용필의 노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누군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서울 서울 서울)에서 보듯이 우체국은 우리에게 소통의 공간이다. 김현성은 그 공간에서 소멸을 보았다.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소멸을 인정해야 홀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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