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매우 ‘로컬’(지역적)이니까(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 지난해 10월7일 “한국영화가 여태껏 왜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나”라는 미국 매체의 질문에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대답이다. 미국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아카데미상에 대한 조롱일까. 승자독식의 할리우드 영화 제작 관행에 대한 비판일까. 이게 아니었다면, 아카데미상을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 포도’쯤으로 생각한 것일까.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가운데)과 배우 이정은(왼쪽), 송강호씨가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힐튼호텔의 무대 뒤편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UPI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은 그 후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며칠 뒤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대흥행이었다. 언론과 평단은 <기생충>에 호평을 쏟아냈다. 봉 감독은 미국 방송 토크쇼, 언론 인터뷰 출연 등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로컬’ 미국을 접수해갔다. 지난 3일 SNS에 공개된, 미 유명 배우 브래드 피트와 송강호가 함께 찍은 사진은 <기생충>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의 손을 잡으며 “<기생충> 팬”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이후 상복이 넘쳐났다. 시드니영화제(SFF) 대상, 호주 아카데미영화제 아시아최고영화상 등 지금까지 받은 해외 영화상만 4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골든글로브상 수상은 폐쇄적인 미국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와 함께 할리우드의 양대 영화상이다. 골든글로브 수상이 아카데미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 영화팬들의 시선은 벌써 다음달 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가 있다. 그러나 수상보다 값진 것은 세계인이 영화를 함께한다는 사실일 터.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말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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