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평화의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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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평화의 여름이 온다

페스티벌의 여름은 끝나고 있는 걸까? 여름을 대표했던 두 록 페스티벌이 모두 전망이 좋지 않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는다. 대신 이 행사를 공동주관했던 지산리조트가 자체적으로 7월26일부터 3일간 ‘지산록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공표했다. 긍정적인 예상이 힘들다. 록 페스티벌 같은 초대형 행사는 꽤 많은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는다. 섭외와 제작, 운영 모두 그렇다. 초기 밸리록페스티벌도 운영 미숙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13년 지산리조트가 다른 회사와 손잡고 열었던 ‘지산월드록페스티벌’은 후기조차 거의 없을 만큼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2006년부터 개최되며 한국 페스티벌의 역사를 만든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은 더 암울하다. 이 행사가 개최된 지 14년 만에 인천광역시는 공동주관사를 공모로 뽑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행사를 처음부터 주관해온 회사 대신 지역 언론사인 경기일보가 주관사로 선정된 것이다. 이 언론사는 페스티벌 주최 경험이 전무하다. 그 과정에서 한때 EDM페스티벌을 만들었으나 많은 논란에 휩싸여온 인물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입찰에서 탈락한 또 다른 회사가 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입찰무효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14년의 역사가 순식간에 수렁에 빠지고 있다. 


한 시대가 좋지 않게 끝날 조짐이 보이지만 새 희망은 있다. 여름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6월7일부터 9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에서 ‘DMZ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하 피스트레인)이 열린다. 피스트레인이 특별한 이유는 이 페스티벌이 ‘가치지향’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시장은 압축 성장해왔다. 록 페스티벌이 대세였던 때는 여름 한 철에 5개 넘는 행사가 열렸다. EDM페스티벌이 대세가 되자 비슷비슷한 이벤트가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 그러니 상업행사라는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문화’는 없고 ‘소비’만 있는 페스티벌시장, 한국의 현실이다. 


피스트레인은 이런 행사들과 괘가 다르다. 마지막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열리며, 이름대로 평화를 기원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이 행사가 여타 페스티벌과 큰 차이를 갖는 지점은 라인업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라인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레전드들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초기 멤버였으며 실험음악계의 거장인 존 케일, 중국 록의 거장인 최건, 그리고 올해 활동 40주년을 맞는 정태춘과 박은옥이다. 말 그대로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청춘을 바친, 그래서 마침내 1996년 사전심의 철폐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정태춘과 박은옥이 있다. 19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상징하며 그 후의 거의 모든 록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존 케일이 있다. 그리고 ‘중국 록의 아버지’이자 ‘一无所有(일무소유)’를 비롯한 명곡들로 중국 민중가요의 거두 역할을 한 최건이 있다. ‘사랑과 평화’ 혹은 ‘저항과 자유’로 대변되는 록 이데올로기의 상징 같은 인물이 6월   철원에 모이는 것이다. 일본, 대만, 태국, 덴마크, 영국 등에서 건너오는 젊은 뮤지션들과 잔나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김사월X김해원, 스텔라장, 아마도 이자람밴드 등 다양한 장르의 국내 뮤지션들도 무대에 선다. 대부분 다른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이들이다.


이런 페스티벌은 세계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유는 페스티벌 시장이 국제화, 산업화되면서 일종의 벨트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에이전시에 소속된 몇 팀이 코첼라를 비롯한 북미 페스티벌을 거쳐 6~7월 유럽 페스티벌에 갔다가 7~8월 아시아 페스티벌을 도는 식이다. 대형 단독 월드 투어가 힘든 팀들이 합종연횡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셈이다. 국내 페스티벌을 찾는 해외 팀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하지만 피스트레인 참가 팀들은 이런 산업적 구분에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열렸던 첫번째 행사는 다른 페스티벌에서 찾기 힘든 에너지로 가득했다. 10여년 전 한국에 페스티벌이 처음으로 열렸을 때의 설렘을 오랜만에 느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평화라는 가치, 휴전선 바로 아래라는 공간의 특징, 그리고 참가한 뮤지션들이 비즈니스 논리에만 얽매여 있지 않은 덕이었을 것이다. 2019년의 여름 바람이 6월의 첫 주말, 북쪽에서 불어오리라.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