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탄생]이제하 ‘모란동백’
본문 바로가기

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노래의 탄생]이제하 ‘모란동백’

[노래의 탄생]이제하 ‘모란동백’
 

추석연휴 안방극장을 뜨겁게 한 나훈아가 발표한 새 앨범에 눈길을 끄는 노래가 있다. 조영남이 먼저 부른 것으로 알려진 ‘모란동백’이 그것이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당대를 대표하는 두 가수가 리메이크한 이 노래의 원작자는 소설가 이제하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하여 부른 노래로 1998년 시집 <빈 들판>(나무생각)을 내면서 부록으로 발매됐다. 처음 제목은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으로 시인 김영랑과 작곡가 조두남을 향한 오마주를 담았다.

이제하는 시인이자 화가이며, 소설가다. 문단에서는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으면서 기타를 들고 공식, 비공식 무대에 자주 서 왔다. 이 노래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그가 만들어 불러왔던 노래다. 한국의 밥 딜런을 연상케 하는 그의 노래가 아까워 지인들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돌려가면서 들었다. 그의 노래에서는 깊이와 철학이 느껴졌고, 목소리 역시 묘한 매력이 있었다. 마치 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닮았다.

조영남이 노래를 듣고 반해서 이제하 선생에게 간청하여 리메이크했다. 틈날 때마다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얘기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나훈아 역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걸 보면 범상치 않은 곡임에 틀림없다.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적 풍토만 아니었다면 이제하는 지금쯤 음유시인 반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