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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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패티 김 ‘이별’


가을 앞에서 패티 김의 노래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초우’ ‘이별’ ‘9월의 노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많은 노래가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이별’은 이 노래의 작품자이자 남편이었던 길옥윤과의 짧지만 아름다운 만남이 스며 있는 노래다. 


‘다리를 꼬고 앉아 큰소리로 웃는 모습이 좀 건방져 보였다. 솔직하게 말해 당당함이 지나쳐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1958년 도쿄 국제극장에서 패티 김(당시엔 린다 김)을 처음 본 길옥윤의 회고다. 길옥윤은 색소폰에 심취하여 일본에서 일하는 재즈 뮤지션이었고, 패티 김은 미8군 공연단의 신인 가수였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1965년이었다. 길옥윤은 일하던 클럽이 망해서 귀국했고, 패티 김도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길옥윤은 패티 김이 묵는 호텔에 전화를 해서 노래를 불렀다


‘사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결국 패티 김은 사랑스러운 로맨티스트에게 청혼했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4월이 가기 전에’와 ‘사랑의 세레나데’가 담긴 앨범을 하객들에게 나눠주고, 신혼여행은 베트남 파병 한국군 위문 공연으로 대신했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달을 쳐다보면은/ 그날 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할 거야’


1973년 5월 ‘이별’이 발표됐을 때 팬들은 두 사람의 파경을 직감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두 사람은 이혼을 발표했다. 1994년 폐암 판정을 받은 길옥윤을 위해 SBS가 마련한 <길옥윤 이별 콘서트>에서 패티 김은 ‘사랑은 영원히’를 열창했다. 이듬해 3월 길옥윤은 파란만장했던 한 생애를 마감했다. 그리고 패티 김도 은퇴했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