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안치환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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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안치환의 ‘아이러니’

그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16년 전이다. 경향신문이 처음 라디오 광고를 해보자고 배경음악을 수소문했다. 여러 가수의 노래를 ‘염가’로 섭외했지만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짧은 공익광고에 나가도 무너지면 안 될 ‘공정가격’이 있다고 매니저에게 상담을 넘겼다. 그때 “나중에 신문사 잘되면 소주 한잔 사주세요”라고 웃으며 허락한 사람이 있었다. 안치환이다. 그는 ‘내가 만일’이란 노래 끝에 “응원해주세요. 대한민국 새 신문 경향신문”이라는 육성도 직접 더했다. 사원주주들이 만드는 독립언론으로 새 길을 갈 때였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소탈하고 커 보였다. 고마웠다는 말 다시 전한다.

 

고향이 화성 매향리인 것도 1990년대 말 그의 콘서트장에서 알았다. 기타를 멈췄다. “내 고향이 매향리예요. 놀라셨죠. 지금 그곳엔 큰 싸움이 벌어졌어요.” 1951년 주한미군 사격장이 들어선 매향리에서 어장과 땅을 징발당한 주민들이 소음·오폭과 ‘뺏긴 평화’에 맞서 싸울 때였다. 긴 싸움은 2005년 사격장을 폐쇄하며 끝났다. 안치환도 2001년 자작곡 ‘매향리의 봄’에서 “매화꽃 향기 가득 퍼지는 날에 너를 안고 춤을 추리라”고 절창했던 땅이다. 그때 콘서트에선 고향 얘기 끝에 노랫가락이 ‘평화’로 바뀌고, 그는 오래도록 눈 감고 노래했다. 간절함이, 가슴이 머리를 때리는 노래였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 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안치환이 7일 공개한 신작 ‘아이러니’가 파장을 낳고 있다. 노래 속엔 ‘자뻑의 잔치’ ‘서글픈 관종’이라는 독설이 이어진다. 그는 촛불시민의 힘으로 집권한 세상에서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빌붙어 알랑대는 ‘똥파리’를 보며 노래를 지었다고 했다. 진보권력을 겨눴다는 보수 쪽 공격엔 “진보진영 내, 진보를 참칭하는 기회주의자를 비판한 것”이라고 잘랐다. “우리들의 낯은 두꺼워졌고, 순수는 무뎌졌다”는 그의 말도 민주화 여정을 함께한 기성세대를 숙연케 한다. 가슴 뜨끔하고 얼굴 붉어지는 사람이 많을 테다. 53년 전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의 외침이 있었다. 2020년 “기회주의자는 꺼지라”는 안치환의 죽비가 세상을 내리쳤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