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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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1)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영국의 젊은이들은 로큰롤과 함께 백인의 블루스를 개발했다(그런데 사진은 별로 젊어 보이지가...)


비틀즈가 영국산 로큰롤이었다면, 영국산 블루스를 연주하는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서 잠깐, 비틀즈가 영국을 넘어 세계를 정복하는 모습을 살펴보기 전에, 영국의 다른 밴드들 - 특히 영국판 블루스의 모습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비틀즈이건 이들이건 미국에서는 로큰롤의 황금기 이전에는 그런 폭발적인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최전선에 있었던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하의 뮤지션들의 본격적인 등장보다는, 단순 시대상으로는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 먼저일 수 있기 때문이다)비틀즈가 최전선에 있었지만, 영국의 로큰롤에는 그와는 구별되는 블루스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비틀즈가 블루스와 무관한 밴드는 아니지만.

앞에서 6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의 흑인 음악의 움직임을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 차별의 존재는 분명했다. 물론 앵글로색슨이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사실 영국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지만,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로큰롤의 몰락 이후 미국에서 ‘폭발력 있던’ 블루스도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뒤에 나올 얘기지만, 지미 헨드릭스의 몬테레이 페스티벌 이전의 주 활동 무대는 영국이었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블루스를 하기에는 영국이 더 적합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흑인 뮤지션들이 보여주던, 컨트리 앤 웨스턴과 뒤섞인 ‘춤추기 좋은’ 블루스가 아닌, 소위 ‘진짜배기 블루스’ 를 더 즐기던 이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즉, 백인들이 연주하는 ‘화이트 보이 블루스’ 가 빛을 본 것은, 블루스의 본고장인 미국이 아닌 영국이었던 것이다.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적어도 크리스 바버(Chris Barber)가 50년대에 연주하던 블루스부터 얘기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굵직한 이름에는 먼저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가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1949년에 21살의 나이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는 50년대부터 이미 시카고 지역의 음악인들과 교류를 가지다가 1955년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를 결성하면서 이후의 영국 블루스에 명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대부분에게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와 믹 재거(Mick Jagger)가 활동했던 밴드로 더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알렉시스 코너의 영향력 하에서는, 아마 잭 브루스(Jack Bruce)와 진저 베이커(Ginger Baker)를 배출했던 그레험 본드 오거니제이션(Graham Bond Organisation)와 존 메이올(John Mayall)이 가장 주요한 인물일 것이다. 특히나 존 메이올은, 영국 화이트 블루스의 전형을 얘기할 경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미국은 얘기가 좀 틀린데, 폴 버터필드 같은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는 그들 자신의 음악의 영향력 외에도, 뒤에 영국 록 음악을 주름잡을 많은 뮤지션들을 배출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를 테면,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의 피터 그린(Peter Green), 롤링 스톤즈의 믹 테일러(Mick Taylor) 등이 대표적이다.

야드버즈(Yardbirds)는 사실 밴드의 유명세에 비해서 오늘날 알려진 곡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밴드는 초기에 밴드를 주도했던 에릭 클랩튼은 물론, 그 뒤를 이은 제프 벡(Jeff Beck)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e)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모두 거쳐간 밴드로서 이름이 높다. 말하자면 계속 생기는 빈 자리를 계속 괴물들로만 채웠던 셈이다. - 역시 되는 놈들은 계속 된다는 교훈이... - 정통적인 블루스 사운드로 시작했으나 뒤에는 약간은 실험적인 사운드로 경도된 바도 있었지만, 야드버즈가 기타리스트가 밴드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재정립한 역할에 대해서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릭 클랩튼은 이후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와 함께 슈퍼 밴드였던 크림(Cream)을 결성하게 된다. 특히나 클랩튼은, 당시 런던 빌딩의 벽에 ‘클랩튼은 신이다’ 는 낙서가 나올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크림은 가장 주목받는 밴드이기도 했다. 크림은 아마도 비틀즈 이후에 60년대 그룹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밴드들 중 하나일 것이다. 크림은 3인조라는 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밴드들과 달랐고, 당대 최고의 실력파들이었던 멤버들의 대단한 연주력에 기반한 파워풀한 연주 및, 비교적 긴 솔로잉 등을 중시하여 사이키델릭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크림은 1966년부터 데뷔에서, 68년 고별 공연까지 3년도 채 활동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강력한 사운드는 블루스와 하드 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Sunshine of Your Love’ 같은 곡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헤비했던 것이다.

Cream - Sunshine of Your Love

에릭 버든(Eric Burdon)과 애니멀스(Animals)는 짧았던 활동 기간 때문에 많이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떤 흑인 보컬리스트에 못지 않게 열정적인 - 레이 찰스의 영향이 다분한 - 목소리를 가졌던 에릭 버든은 당시 자신만의 사운드를 가진 뮤지션 중 하나였다. 버든 외에도, 앨런 프라이스(Alan Price)의 오르간 연주가 애니멀즈를 특징짓는 부분이었으며, 67년 해산하기까지 ‘House of the Rising Sun’ - 이 곡 때문에 밥 딜런(Bod Dylan)이 전기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기도 - , ‘Don't Let Me Be Understood’ 등의 곡들을 남겼다. 에릭 버든은 이후에도 사이키델릭 밴드였던 워(War)나, 애니멀즈의 간헐적인 재결성 등을 통해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베이시스트였던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는 뒤에 매니저로서 지미 헨드릭스를 발굴하여 영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Animals - House of the Rising Sun. 많은 뮤지션들이 연주했던 트래디셔널 송이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밴 모리슨(Van Morrison)과 그의 밴드 뎀(Them)은 전형적인 록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소울(‘블루아이 소울’ 의 전형이라 불리는 사람이니) 뮤지션이지만, 소울만이 아니라 재즈, 블루스, 로큰롤, 리듬 앤 블루스, 켈틱 포크 등 많은 영역을 탐구하였고, 동시대의 다른 어느 밴드보다도 탐미적인 편이었다. 그리 자극적이지도, 멜로디가 명확하지도 않았던 그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모리슨의 “Astral Weeks” 는 최고의 명작으로 회자되며(물론 상업적으로는 대실패였다. 현재까지도 25만장이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뎀도 ‘Gloria’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흔적을 남겼다.

Van Morrison - Madame George. "Astral Weeks" 가 놀라운 점의 하나는, 이틀만에 녹음되었다는 사실이다